2012년, 한국 건설업계가 1966년 첫 해외수주에 성공한 뒤 47년 만에 해외건설 5,000억달러(누적) 시대를 열었다. 해외수주의 텃밭인 중동을 중심으로 북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유럽, 중남미 등 지구촌 전역으로 사업무대를 넓혀가며 땀과 노력으로 쌓은 실적이다. 이를 바탕으로 1조달러 수주ㆍ세계 5대 건설강국 진입이란 새로운 목표를 향해 힘찬 도약의 시동을 건 국내 건설사들의 노력과 활약상을 2회에 걸쳐 소개한다.
올해 국내 건설업계의 해외수주 목표액은 700억달러. 여기에 1조달러 수주 달성과 세계 5대 건설강국 진입이란 중장기 목표까지, 국내 건설업계가 이제까지 이뤄온 5,000억달러 수주 성과를 바탕으로 해외건설의 제2 도약을 위한 뜨거운 담금질을 본격화하고 있다.
핵심 무대는 중동. 풍부한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기반시설 확충과 고부가가치 석유화학ㆍ전력 플랜트 발주물량을 늘리고 있는 중동 산유국들은 국내 건설업계가 최대 수주고를 기록중인 황금어장인 동시에, 앞으로 수주 물량을 더욱 확대해야 하는 해외수주의 보고(寶庫)다. 지난 47년간 지역별 누적 해외수주 실적에서도 중동이 3,019억 달러로 60%를 차지하며 2위인 아시아 1,479억 달러(30%)를 멀찌감치 제칠 정도다.
10일 해외건설협회 등에 따르면 올해 중동 국가에서 발주될 건설 물량은 약 1,500억달러 규모다. 지난해 1,080억달러보다 40% 가까이 늘었다. 건설업계는 이 같은 전망을 바탕으로 지난해 295억달러 수준이던 중동지역 해외건설 수주액이 올해 처음으로 300억달러를 무난히 넘어설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약속의 땅' 중동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굵직굵직한 수주 소식들이 전해지면서 해외수주 전망을 밝게 한다.
먼저 해외 발주가 까다롭기로 소문난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국내 업체들은 눈부신 활약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발주된 총 720억달러어치 공사 중 30% 가량인 166억달러를 국내 건설업체들이 차지했다. 현대건설은 올 들어서만 원유 및 가스처리 시설과 석유화학 플랜트, 산업설비 플랜트 부문인 알루미나 제련공사 등 총 37억달러어치의 공사를 수주하며 사우디에서의 경쟁력을 재확인했다.
GS건설은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국영석유회사 아람코가 발주한 18억달러 규모의 페트로 라빅 석유화학플랜트 공사를 따냈다. 올 들어 회사가 수주한 해외사업 중 가장 큰 규모다. 올해 수주 목표 16조5,000억원 가운데 GS건설은 해외에서 60%인 10조원 가량을 벌어들일 계획인데, 이 가운데 중동지역 비중을 70% 이상 두고 있다.
대림산업은 지난해 10월 사우디 전력청이 발주한 12억2,000만달러 규모의 쇼아이바Ⅱ 복합화력발전소 건설공사를 따낸 데 이어 최근 7억1,000만달러짜리 합성고무 생산 플랜트 공사를 수주하며 사우디에서만 누적 수주액 150억달러를 넘어섰다. 현재 사우디에서 진행 중인 플랜트 공사 현장만 9곳. 공사 금액으로는 73억 달러에 달한다.
플랜트 발주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서는 GS건설과 삼성물산이 눈부신 활약을 보이고 있다. 2007년 UAE 아부다비석유공사(ADNOC)가 발주한 청정 디젤 생산공장 프로젝트를 수주하며 중동 고부가가치 플랜트 사업을 본격화한 GS건설은 지난 2010년 단일 프로젝트로 31억달러에 달하는 초대형 플랜트 공사를 따내는 저력을 보일 정도로 현지 경쟁력을 쌓았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세계 최고층 빌딩인 두바이 부르즈칼리파와 두바이 인공섬을 연결하는 제벨알리 연결교량 등으로 UAE 건설ㆍ토목시장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을 발휘하고 있다.
정부도 국내 기업의 중동 진출을 지원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지식경제부와 코트라는 지난달말 '중동진출 종합지원센터'를 열고 중동 진출을 계획중인 기업을 위해 투자ㆍ프로젝트 정보를 제공하고 특화된 마케팅 지원사업을 개발하기로 했다. 코트라는 관련 사업팀의 중동 진출 지원 사업을 조율하고 중동 지역 15개 무역관을 통해 기업들의 현지 지원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해외건설협회 관계자는 "중동 국가들이 오일머니를 기반으로 고부가가치 플랜트와 사회간접자본시설(SOC)을 확충하기 위해 발주 물량을 늘리고 있어 제2 중동 붐에 대한 기대가 크다"며 "해외공사 5,000억달러 수주 달성의 근본이 됐던 중동은 1조달러 달성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이끌어낼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태훤기자 besame@hk.co.kr
■ 남미로 아프리카로… 지역·공종 다각화 잰걸음
중동지역과 플랜트에 집중된 해외건설의 수주 지역과 분야를 다양화하는 것은 국내 건설업체가 해외수주 1조달러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숙제다.
업계도 이 같은 현실을 인식해 업체마다 제3국 진출과 공종(工種) 다변화를 위한 발판 마련을 위해 노력하고 있고 성과도 조금씩 가시화하고 있다.
현대건설은 최근 29억9,500만달러 규모의 베네수엘라 푸에르토라크루스 정유공장 확장 및 설비개선 공사 수주를 계기로 현지 처녀 진출에 성공했고, 중남미 시장 진출을 가속화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했다. 특히 석유화학 분야에 비해 진출이 적었던 정유플랜트 공사를 수주함으로써 앞으로 이라크와 쿠웨이트 정유공장 공사에도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게 됐다.
대우건설은 알제리에서 죽음의 강으로 불리는 엘하라쉬강 하천복원사업을 수주하며 해외 환경사업 분야로 본격 진출을 선언했다. 국내 기업이 우리나라 하천 복원기술을 바탕으로 해외에 진출한 것은 이 사업이 처음이다. 대우건설은 또 아랍권 국가 가운데 상대적으로 수주가 적었던 아랍에미리트연합(UAE)와 카타르 이라크 등에 새롭게 진출하거나 확대하고, KDB산업은행과 협력해 남미 사회간접자본(SOC) 시장에도 진출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삼성물산은 민관협력(PPP) 사업영역을 넓혀나가고 진출 지역도 중동과 동남아를 넘어 남미, 아프리카, 호주 등 전세계로 활동범위를 확대할 방침이다.
GS건설은 지난해 11월 세계 10위권 수(水)처리업체인 스페인의 이니마를 인수하면서 글로벌 수처리시장에서 경쟁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발판을 갖췄다.
전태훤기자 besame@hk.co.kr
■ 일감 느는데 일할 사람 없어
"수주가 문제가 아니라 일할 사람이 없다는 게 문제죠."
국내 건설업계가 제2 중동 붐을 맞고 있지만, 마음이 마냥 편치만은 않다. 수주가 늘어나면서 일감은 늘어나고 있는데도 공사를 수행할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일자리가 부족한 국내 경제상황과 반대로 해외건설 시장에서는 인력품귀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10일 국토해양부와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우리나라 업체의 해외현장(107개국, 1,804개 사업장)에는 총 18만명이 근무 중이다. 해외공사 인력 수급상황을 볼 때 올해만 2,200여명이 더 필요한 상황이며 2015년까지 해마다 3,500명씩 총 1만4,000명의 인력이 부족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앞장서 해외 인력 양성을 위한 특별교육까지 실시하고는 있지만, 현지에서 필요한 인력을 채우기에는 역부족이다. 문제는 필요 인력이 단순 노동자가 아닌 글로벌 역량을 갖춘 전문기술자라는 점이다.
해외 건설시장에서 한국인 인력이 갈수록 줄고 있는 것도 문제다. 해외건설협회 집계에 따르면 현재 한국 기업이 시공중인 해외 현장에서 근무 중인 한국인은 1만7,400여명으로 전체 18만명 중 9.7%에 불과하다. 1차 중동 붐이 일던 1981년에 해외 현장에 근무한 한국인이 전체 18만명 중 79%에 달했던 것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한 규모다.
전문가들은 건설산업의 인력수급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해 국내 인력의 해외 파견을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복남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내국인 인력이 적어도 20%(3만6,000명) 수준까지는 늘어나야 외화 가득률을 극대화할 수 있으며 국내 실업률 해소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며 "국내에선 건설인력의 27%가 구직난을 겪고, 해외에선 구인난을 겪는 건설인력 수급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해외근로자에게 지급하는 수당에 대해 비과세 혜택을 주는 등 유인책을 마련해 국내 잉여 건설인력이 해외현장으로 옮겨갈 수 있도록 길을 터줘야 한다"고 말했다.
박관규기자 a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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