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메아리] 재벌 공약 '글로벌 프레임'이 없다

입력
2012.07.10 12:03
0 0

인터넷 언론 프레시안에서 우리 경제의 나아갈 방향을 두고 '실천적' 경제학자들 간에 진진한 논쟁이 벌어졌다. 최근 2개월여 동안 10여 차례에 걸쳐 비판과 반론, 재반론이 이어진 논쟁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제 가정교사'로 알려진 정태인 성공회대 겸임교수가 장하준 영국 캐임브리지대 교수 등이 공저한 책 를 비판하면서 시작됐다. 대표적 쟁점은 재벌개혁이다.

장하준 등은 책에서 출자총액제한제도와 순환출자금지를 통한 재벌 해체에 초점을 둔 급진 재벌개혁론은 우리 대기업집단 특유의 역동적 경쟁력을 훼손할 뿐 아니라, 경영권 방어력을 약화시켜 그것들을 외국 투기자본에 넘겨주는 결과까지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따라서 총수가 밉다고 재벌 해체를 밀어붙이기보다 대기업집단의 현 체제를 인정하는 대신 증세, 고용 및 투자, 동반성장 등의 기여를 확보하는 '사회적 대타협'이 현실적이라고 했다.

정태인의 비판은 현 체제를 인정해줘도 재벌은 절대로 합당한 사회적 기여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불신에서 출발한다. 그런 맥락에서 장하준 등을 물정 모르는 '재벌 옹호론자'라고도 했다. 즉각 책의 공저자인 정승일(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이 반격에 나섰다. 그는 출총제 등은 신자유주의 금융자본들이 기업이야 망하든 말든, 투자보다 배당을 늘리고 단기에 고혈을 짜내기 위해 써먹었던 방식임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걸 무슨 '정의의 칼'로 여기는 재벌해체론자들이야말로 거대한 착각에 빠진 '좌파 신자유주의자'에 불과하다고 공박했다.

'사회적 대타협'을 둘러싼 논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2007년부터 장하준에 대해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 등이 나서 반론을 펴왔다. 하지만 건설적 대안을 내자는 이번 논쟁에서도 양측은 결국 대승적 접점을 찾는데 실패했다.

접점을 찾기가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논쟁에선 거의 부각되지 않았지만, 애초에 우리의 경제 현실을 바라보는 양측의 프레임부터 차원이 달랐는지 모른다.

한쪽은 글로벌 자유시장체제에 따라 일국(一國) 정부가 역내외 자본 이동 같은 경제 상황을 규율 할 수 있는 배타적 주권이 거의 사라진 현실에 주목한다. 사실, 글로벌 자본이 수익 추구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위해 광속으로 떼를 지어 국경을 넘나드는 '세계자본주의' 상황의 문제성은, 외국 자본에 우리 대기업을 빼앗길 수 있다는 경고보다도 훨씬 심각하다. 우리 기업과 경제가 양호해 글로벌 자본이 군침을 흘린다면 오히려 다행이다. 반대의 경우엔 글로벌 자본은 물론, 국내 자본까지 한국을 떠나면서 그나마 지금의 번영조차 지키지 못할 정도로 우리 경제가 침몰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에 주목하는 쪽은 세계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앞으로 우리 경제의 살 길을 어떻게 일궈 낼 지가 절실할 수밖에 없다.

반면 다른 쪽에선 우리 경제를 글로벌 체제와 연동되지 않은, 일종의 존재독립적인 체제로 본다. 선명한 주장을 위해 일부러 대외변수를 제거한 실험실 상황을 상정한 것인지, 아니면 대외변수 자체를 절박하게 체감하지 못하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여하튼 이런 관점에선 '세계 속의 우리 경제' 같은 문제 보다는, 재벌을 비롯한 국민경제 내부의 모순을 해결해 '정의롭고 좋은 경제'를 이루는 것이 더 절실할 수 있다.

학자들의 정의로운 이론적 모색은 어쨌든 필요하고 소중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곧 치열한 현실 속에서 국민을 먹여 살리고 국부를 증진시키는 경세(經世)의 방책일 수는 없다. 놀라운 건 1997년 경제위기 이래 우리 경제를 둘러싼 세계자본주의 상황이 점점 더 강고해지고 있음에도, '글로벌 프레임'을 도외시한 강퍅한 '정의론'이 주요 정당의 대선 공약까지 장악할 정도로 득세하는 현실이다.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워버리겠다'는 식의 공약이 횡행하는 현실은 뭔가 잘못됐다. 정치가 각성해 중심을 잡고, 국민이 냉정히 분별해야 하겠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