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업체 사주 최모씨는 조세피난처인 아프리카 라이베리아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뒤 이를 활용해 선박회사를 운영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발생한 수익과 선박 매각대금 1,700억원을 스위스 등의 차명계좌에 숨겼다. 이후 상속세 부담을 낮추기 위해 은닉자금을 부인, 자녀, 내연녀 등에게 송금하거나 사용처를 불분명하게 조작해 물려줄 재산이 없는 것처럼 위장했다. 국세청은 최씨 사후 이런 사실을 확인하고 자녀 등을 상대로 상속세 등 1,515억원을 추징하고 검찰에 고발했다.
부동산투자업자 서모씨는 선친이 친인척에게 명의신탁 한 기업의 주식 매각대금 450억원을 해외 허위투자 방식으로 미국으로 빼돌렸다. 이어 외국 현지법인에 가공경비를 계상하는 수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해 홍콩계좌에 숨겨왔다. 그는 국세청의 해외계좌 조사망에 걸려 상속ㆍ증여세 680억원과 해외금융계좌 미신고에 따른 과태료를 추징당했다. “국내에서 축적한 부를 외국으로 유출해 납세의무를 저버리고 국내와 외국을 오가며 호화생활을 한 양심불량 부유층의 전형”이라는 국세청의 설명이다.
국세청이 해외 조세피난처를 이용한 대기업과 부유층, 한류 연예기획사 등의 재산도피ㆍ탈세 행위에 칼을 빼 들었다. 국세청은 올 하반기 역외탈세에 조사역량을 집중키로 하고 관련 혐의가 짙은 40개 업체에 대해 세무조사에 착수했다고 10일 밝혔다.
조사 대상에는 일부 대기업과 함께 해외공연과 소속 연예인의 외국드라마 출연 등으로 번 소득을 해외계좌에 숨겨온 연예기획사가 포함됐다. 또 기술 제공에 따른 거액의 로열티를 해외 개인계좌로 받아 법인세를 탈루한 중견 제조업체와 자신을 국내 비거주자로 위장해 외국인등록번호와 여권번호로 신분을 세탁한 뒤 배당소득을 챙긴 탈세혐의자도 들어있다.
국세청은 역외탈세 적발을 위해 조세피난처와 금융정보 교환협정을 늘리고 있다. 지난해 말레이시아와 조세조약을 체결하면서 부유층의 조세피난처로 이용되는 라부안에 대해 국내 조세법을 적용하는데 합의했으며, 파나마ㆍ케이먼군도ㆍ버진아일랜드 등 다른 조세피난처와도 조약을 체결했다. 국세청은 해외 과세당국과 교환한 조세정보 자료를 토대로 해외금융계좌 미신고자 중 역외 탈세혐의자를 선별해 지난해 9,637억원을 추징한 데 이어 올해 상반기에도 105건을 조사해 4,897억원을 추징했다.
임환수 국세청 조사국장은 “한국과의 조세조약 발효를 위한 스위스 측 행정절차가 7월 말 완료되면 즉시 탈세혐의자에 대한 금융정보 교환이 가능해져 역외탈세 추적이 활기를 띠게 될 것”이라며 “국내 부유층이 비밀계좌를 많이 개설한 것으로 알려진 홍콩과도 조세조약을 조속히 체결하기 위해 협상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국세청은 올해 상반기에 중소기업을 상대로 연 1,400%가 넘는 이자를 갈취해 온 사채업자와 농어촌 노인들에게 건강보조식품을 강매해 폭리를 취해 온 판매업자,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로 관세가 인하됐는데도 가격을 내리지 않은 식음료 수입업자 등 민생침해 탈세 105건을 적발, 총 2,114억원을 추징하고 과태료 부과와 함께 검찰에 고발했다.
정영오기자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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