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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뉴욕 한복판의 김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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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뉴욕 한복판의 김정일

입력
2012.07.09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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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 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온 관광객이 모여드는 미국 최고의 명소 뉴욕 타임스퀘어에는 지난 봄부터 커다란 김정일 이미지가 등장했다. 세계 대기업의 광고들 사이에 낀 그것은 작년 12월 김정일 장례식에서 사용된 영정사진이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울부짖던 북한 인민들의 영상이 나타났다. 설마 북한 체제나 '장군님'을 찬양·추모하는 광고가 타임스퀘어에 나왔을까? 그것은 세상에는 우리가 이해 못할 괴상한 일도 많다는, 어느 미국 대기업 광고의 한 장면이었다. 물론 코믹하고 풍자적인 내용이었다.

한 국가의 국민이 절대적으로 존경하는 지도자와 그 죽음에 대한 애도가 웃음거리로 되는 그런 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될까. 아마도 미국사회가 북한체제와 대한 존중심이 전혀 없기 때문에 그같은 타자화와 조롱도 가능했을 것이다. 문제는 그런 식의 대접이 '무력 공격' 같은 일도 가능하게 만드는 정서적 배경일 수 있다는 점이다. 후세인이나 카다피, 그리고 아랍 사람은 얼마나 많이 조롱 당하고 타자화되었던가. 국경을 맞댄 '한 민족'의 국가가 그런 대접을 받는다는 것은 한반도 남쪽에 사는 우리에게도 큰 불행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오늘날 북한에 대한 미국인들의 '관심'은 진지한 면으로도 높다. 미국의 아시아학계만 봐도 그렇다. 근래 새로 북한 연구에 뛰어드는 연구자도 많고 '돈'도 쏠린다. 북한 정치나 체제 뿐 아니라 사회ㆍ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영화나 일상생활에 관한 수준 있는 논문이 생산되고 있다. 미국 주요 대학의 도서관들은 제3국에 있는 에이전트들을 통해 거액을 주고 북한 자료를 구매한다고 한다. '유행'이라고까지 할만한 북한학 열기는 앞으로 몇 년은 더 이어질 것 같다. 이 열기의 이면에는 분명 학문의 외피를 입은 공격적인 '안보' 차원의 관심과, 모든 지역학이 내포한 제국주의적이거나 오리엔탈리즘적인 지식욕이 포함돼 있을 것이다.

그런데 북에 대한 지식욕ㆍ정보욕에 대해 남한 사람들이 적절하고 주체적인 태도를 취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저 북쪽의 조그맣고 괴상한 체제가 미국인들에겐 그저 호기심이나 정벌의 대상일 수 있어도, 우리에게는 삶과 자유의 절대적인 변수이다. 그런데 그게 민족 공멸의 가능성을 높이는 일이라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떤 한국인들은 너무 쉽고 안일하게 북에 대한 타자화와 적대에 동조하고 심지어 조장하기까지 한다. 지식과 정보를 팔아먹기도 한다. 뼛속까지 친일ㆍ친미라는 이명박정권이 이번에 저지른 일도 바로 그런 것 아닌가. 일본이 군침을 흘린 것은 남이 가진 대북 정보 능력이었다고 한다. 언제나 주변의 강국은 남북의 분열과 대립을 자신의 이익과 팽창에 이용해먹으려 한다.

그래서 결국 문제는 북한에 대한 우리의 태도이다. 며칠 전에 북에 '무단 방문'해 김정일을 찬양한 것으로 알려진 사람이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됐다. 그의 행위는 돌출적이고 유치한 것이지만, 그런 행위에 대한 호들갑과 처벌 또한 혐오스럽다. 그것이 단지 민주주의의 대원칙에 어긋나서만이 아니라, 그런 종북적 행위와 처벌이라는 악순환이야말로 최악의 분단정치이며, 남북의 특권 계급이 '적대적으로' 공존하는 방법론이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과 세습 체제는 남과 북에 각각 존재하는 두 가지 악이 아니다. 파시즘적 법과 비밀경찰에 의해서만 유지되며, 세습이 민주적 선출보다 더 중요한 권력 재생산의 도구가 되는 상황은 한반도 전체를 관통하며 민중을 지배하는 억압과 불평등의 공통적인 핵이다. 더구나 지난 몇 년간 남북의 국가체제는 한반도 주민들에 대해 선의 경쟁이 아니라 악의 경쟁을 해온듯하다. 1948년 이래 김일성 일가와 북의 체제가 남한 사람들한테 이보다 더 혐오스러운 적이 또 없었고, 남의 정권이 평화와 민주주의를 이렇게 후퇴시킨 것도 1990년대 이래 처음이다. 보안법세력ㆍ세습권력을 물리치고 민주주의가 한반도 전체를 화해시키는 날을 보고싶다. 남쪽에 사는 사람이 할 일은 우선 지금보다는 훨씬 나은 정부를 만드는 일일 것 같다. 국보법과 또다른 버젼의 세습체제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남쪽이 북보다는 낫다는 신념을 다치지 않고 싶기 때문이다.

천정환 성균관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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