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보다는 배우라는 호칭이 더 어울리던 사람. 비비안 리와의 세기적 사랑으로 주목을 받았고 셰익스피어의 대사를 자신의 생각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말할 줄 알았던 배우 로렌스 올리비에가 1989년 7월 11일 82세로 생을 마감했다.
60년간의 배우생활을 통해 아카데미상을 두 번 수상하고 에미상과 골든글로브까지 석권한 올리비에는 조각 같은 외모와 연기력으로 팬들의 무한한 사랑을 받으며 죽음의 순간까지도 연기를 이어간 행복한 배우였다.
1907년 영국에서 태어난 그는 금욕과 절제의 가풍 속에서 교양을 목적으로 연극 무대에 서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며 연기를 시작했다.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 정통극단에서 활동하며'말괄량이 길들이기', '한여름 밤의 꿈'등의 작품을 소화했으며'햄릿'과 '멕베스'에서는 자신만의 화술과 빼어난 연기로 이전과 전혀 다른 새로운 '햄릿'을 창조해 냈다.
1929년'이층 살인사건'이라는 연극으로 화려하게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 진출한 올리비에는 무대에서 운명적인 여인을 만나게 된다. 연극 '햄릿'에서 오필리어 역을 맡았고 '영광의 결전'이라는 영화에서 함께 공연했던 여인, '비비안 리'였다.
엄청난 연기 내공과 성적 매력을 발산하던 올리비에와 아름다움과 매력의 화신이었던 리는 이내 사랑에 빠졌고 첫 눈에 반한 두 남녀의 운명적인 사랑 앞에서 가정이라는 장벽은 큰 굴레가 되지 못했다.
공개석상과 사석을 가리지 않고 실과 바늘처럼 붙어 다니던 두 사람은 영화에서도 큰 성공을 거뒀다. 1939년 각자 출연한 '폭풍의 언덕'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박스오피스 수위를 놓고 서로 다투기까지 했다.
특히 리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스칼렛 오하라'역을 맡으며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까지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짧지 않은 스캔들 시간을 거친 1940년 마침내 둘은 기존의 배우자와 결별한 후 결혼식을 올렸지만 행복한 생활이 오래가지 못했다. 고된 촬영과 피로로 인해 리는 폐결핵을 앓게 됐고 조울증과 정신분열증이 수시로 그녀를 괴롭혔다. 이를 바라보는 올리비에 또한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운명이라 믿었던 두 사람은 20여 년 만에 결별 했다. 1967년 7월 8일 리의 죽음 앞에 한없이 흐느끼던 올리비에도 89년 무대를 떠나 세상과 이별하고 만다.
최고의 셰익스피어 해석가이자 불멸의 배우였던 로렌스 올리비에. 비비안 리가 사랑한 그에게 영국은 귀족 작위를 부여하고 올리비에 상을 제정했다.
손용석기자 st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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