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 한 땀 꽂을 틈도 없어 보였다.
1922년 완공된 영국 윔블던 올잉글랜드클럽 센터코트 1만5,000석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미처 표를 구하지 못한 수 천명의 관중은 경기장 밖 '헨만 언덕'에 설치된 초대형 스크린을 마주보고 있었다. 1936년 자국선수 프레드 페리가 바로 이곳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린 이후 이렇게 집중조명을 받은 경기는 찾기 어려웠을 정도. 관중들은 이심전심 영국과 스코틀랜드 국기를 쥐고 있었다. 이들은 스코틀랜드 출신의 영국인 앤디 머레이(25ㆍ랭킹4위)가 한 포인트를 따낼 때마다 우레 같은 박수로 화답했고 유니언잭과 성 안드레아의 십자가 문양을 흔들면서 격려를 보냈다.
9일(한국시간)새벽 윔블던테니스 남자단식 결승전에서 머레이와 로저 페더러(31ㆍ스위스ㆍ1위)가 맞붙은 현장이었다. TV카메라도 경기장을 찾은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와 케이트 미들턴 영국 왕세손비, 알렉스 퍼거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 축구 스타 데이비드 베컴 부부 등을 비추며 이번 경기가 갖는 의미를 애써 짚어냈다.
바로 머레이가 76년 묵은 '윔블던의 저주'를 끝장내 달라는 것이었다. 영국은 페리 이후 76년동안 윔블던 남자 단식 챔피언을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윔블던 효과'(Wimbledon Effect)라는 오명도 낳았다. 대회는 영국에서 열리지만 챔피언 트로피는 외국선수들의 몫이라는 비아냥거림이다. 여자단식 챔피언도 1977년 버지니아 웨이드(67) 이후 35년째 나오지 않고 있다.
국민들의 열망 속에 머레이는 1세트를 6-4로 따내며 기대에 부응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과 동시에 끝이었다. 페더러가 세트스코어 3-1(4-6 7-5 6-3 6-4) 역전승을 거두고 자신의 윔블던 7번째(피트 샘프러스와 동률)이자, 메이저 통산 17번째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이로써 올 시즌 윔블던 남녀 챔피언은 모두 30대가 차지하게 됐다. 여자단식 챔피언 서리나 윌리엄스(미국)는 페더러와 동갑내기. 체력이 관건인 테니스에서 30대를 넘긴 노장들이 챔피언에 오르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페더러에게 윔블던은 '안방'이다. 2003년 윔블던에서 첫 메이저 우승을 신고한 이래 2007년까지 5연패를 이뤘다. 이듬해 라파엘 나달(26ㆍ스페인ㆍ3위)에게 챔피언 자리를 넘겼으나 2009년 재탈환해 자신이 진정한 주인임을 확인했다.
하지만'테니스 황제'란 닉네임을 앞세워 승승장구하던 천하의 페더러도 2010년 호주오픈 우승을 끝으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매년 수확하던 메이저 우승컵도 남의 몫으로 남겨둬야 했다. 윔블던에서도 2010~11년 2년 연속 8강에서 탈락했다. 그 사이 노박 조코비치(25ㆍ세르비아ㆍ2위)가 황제의 자리를 잠식해 왔다. 랭킹도 3위로 떨어졌다.
만 30세를 넘기자 주변에서 은퇴라는 말이 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단호하게 "NO"라고 외쳤다. 그리고 마침내 윔블던 챔피언트로피에 다시 한번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
주목할 것은 페더러가 랭킹 1위 자리도 되찾았다는 것이다. 페더러는 이로써 개인통산 286주 랭킹1위 기록을 보유한 샘프러스의 기록도 갈아치우게 됐다. 페더러는 "내 품에서 (트로피를) 떠나 보낸 적이 없는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패자 머레이에 대해서도 "그가 머지않은 미래에 메이저에서 여러 번 우승할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고 위로했다.
테니스의 모든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페더러의 남은 과제는 올림픽 금메달을 손에 넣어 '커리어 골든슬램'(4대 메이저대회와 올림픽 단식 우승) 화룡점정을 찍는 것이다. 지금까지 나달만이 대미를 장식했다. 20일 후 바로 이곳 윔블던에서 열릴 런던올림픽 테니스가 기다려지는 이유다.
최형철기자 hccho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