힉스 입자(보손) 발견에 대한 미국 정치권의 어이없는 반응이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미 의회는 1993년 텍사스주 왁사하치에 건설하던 세계 최대 규모의 초전도 입자가속기(SSC)에 대한 자금지원을 예산부족을 이유로 중단했다.
힉스 입자를 신의 입자로 명명한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레온 레더만이 "똑똑한 사람들이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프다"고 탄식했지만, 이미 16억달러가 투입된 87km 길이의 원형 지하터널은 6억달러를 들여 메워졌다. 그리고 19년 뒤인 이달 4일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가 SSC의 3분의 1에 불과한 27km 길이의 강입자가속기(LHC)를 이용해 힉스 입자로 추정되는 새 소립자를 찾았다고 발표, 세상을 놀라게 했다. LHC보다 수 백배 성능이 뛰어난 SSC가 예정대로 2003년 완공됐다면 우주 신비를 규명할 대발견은 미국 몫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보다 충격에 휩싸여야 할 미 정치권은 이번 발견마저 정쟁 도구로 이용하며 무책임한 발언을 쏟아내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
미트 롬니 공화당 대선후보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유럽에 승리를 허용했다"며 "(대통령이 되면) 모든 소립자들은 미국에서, 미국인에 의해, 미국을 위해 발견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이 다시 SSC를 건설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되자 다음날 "(발언 진의는) 물리학자들이 더 열심히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수정하는 해프닝을 빚었다. 롬니는 보손 입자와 페르미 입자를 구분하지 못한 점도 정정했다. 공화당 부통령 후보 물망에 오른 크리스 크리스티 뉴지저 주지사는 "힉스 입자 권리를 경매에 붙여 미국에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말했다가 한 기자로부터 "힉스 입자는 유럽에서 발견됐다"는 지적을 받았다. 롬니와 경선에서 경합했던 릭 샌토럼 전 상원의원은 "하느님이 소립자를 원했다면 아담과 이브에게 주었을 것"이라며 CERN이 신의 뜻을 거역했다는 논리를 폈다. 보수성향의 부동산 거물 도널드 트럼프는 한발 더 나아가 "미국이 소립자 연구에서 뒤로 밀려난 것이 오바마 행정부와 중국 기업가들의 음모 때문이란 말이 있다"며 '힉스 보손'을 자신이 진행하는 TV쇼 '어프렌티스'에 초청했다고 이번 발견을 희화화했다.
오바마 대통령도 힉스 입자 발견을 정치에 이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 위대한 역사적 발견이 나의 자동차 산업 구제와 다르지 않다"며 "발견에 간여한 물리학자들은 모두 건강보험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보다 자신의 집권 기간에 더 많은 힉스 입자가 발견됐다는 엉뚱한 말도 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게일 콜린스는 이런 정치인들의 발언을 "미국 정치의 블랙 홀"이라고 비판했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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