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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창무극 선구자' 공옥진 여사 별세/ 서민 웃기고 울린 '시대의 예인'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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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창무극 선구자' 공옥진 여사 별세/ 서민 웃기고 울린 '시대의 예인' 떠나다

입력
2012.07.09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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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창무극’이란 독보적 전통 연희 양식으로 한국인들의 심금을 울렸던 공옥진 씨가 9일 오전 4시52분 전남 영광의 한 병원 중환자실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9세. 공씨는 1998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투병 중이었다.

2007년에는 국민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돼 매달 생활비 43만원을 받아 어렵게 생활해왔으며, 2010년 6월 국립극장에서 열린 ‘한국 명인 명무전’ 공연을 마지막으로 고향인 영광으로 내려갔다.

공씨는 전통 무용에 동물의 특징적인 행태를 양식화한 동물춤을 창안, ‘창무극’으로 발전시켜 웃음과 눈물로 한국 서민들을 위무했다. 창무극은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소리, 춤, 재담 및 몸짓을 섞은 일종의 연극으로 공씨가 78년 서울 공간사랑 개관 기념공연에서 ‘1인 창무극’을 처음 선보였다.

특히 공씨의 이른바 ‘병신 춤’은 그의 대명사처럼 여겨졌다. 심청전 맹인잔치 대목에서 그가 풀어놓은 병신 춤에 관객들은 배를 잡고 모두 웃었고, 공간사랑의 고정 공연으로 자리잡았다. 병신 춤은 양반을 신체장애인이나 병자를 흉내 낸 전통춤으로, 지나치게 기괴한 표정과 동작으로 일부에서 비난의 목소리도 있었다. 이 때문에 공씨는 많이 힘들어한 것으로 알려졌다.

판소리 명창 공대일의 4남매 중 둘째로 태어난 고인은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창을 배우고 10세를 전후해 아버지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당대 최고의 무용가 최승희의 집에서 잡일을 도와주기도 했다. 고인이 양식화한 ‘1인 창무극’은 공식 문화재로 인정받지 못하다가 2010년 5월에야 심청가 부분만 전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고인의 창무극은 소리판 특유의 생생한 현장감이 전혀 걸러지지 않고 객석에 그대로 전달되는 특유의 공연 형식으로, 그 해학성 앞에서는 전문가ㆍ비전문가의 구분이 없었다. 특히 기존 정규 무대에서 금기시되던 저잣거리의 욕설과 비어가 난사되는 대목에서는 예술적 인내의 한계를 넘는 것으로 간주되기도 했다. 하지만 동양인으로는 최초로 미국 링컨 센터에서 단독 공연을 하기도 했고 일본, 영국 등 유럽 무대까지 진출해 외국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

그러나 공씨의 춤이 선풍적 인기를 끌자 기획자들이 앞다퉈 상품화하면서 상업적으로 이용된 점은 아쉬움으로 지적된다.

고인의 유일한 제자는 영광문화원 사무국장 한현선(48ㆍ여)씨로 알려졌다. 한씨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공씨의 창무극을 보고 문하생이 된 이후 지금까지 고인의 옆을 지키며 창무극의 전통을 이어왔다.

무용 평론가 장광렬씨는 “한국인의 일상에 기반을 둔 독창적 몸짓으로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었다는 점에서 고인은 ‘예인’으로 불리는게 마땅하다”고 말했다.

유족으로는 딸 김은희(63) 씨와 손녀 김형진(40) 씨가 있다. 고인은 걸그룹 2NE1 멤버 공민지의 고모할머니이기도 하다. 빈소는 전남 영광 농협장례식장 2호실, 장례는 영광문화원 주관으로 문화인장으로 치러지며 발인은 12일 오전 10시. 장례위원회는 광주 영락공원 화장장에서 고인을 화장한 후 무등산 문빈정사에 안치할 계획이다. (061)353-0444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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