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학부의 위탁으로 2013년도 중등교과서 검정을 하고 있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최근 출판사에 정치와 관련 있는 인물의 작품을 싣는데 신중을 기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정인의 이미지를 부추길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구체적으로 민주통합당과 새누리당의 비례대표로 나란히 국회의원이 된 시인 도종환씨의 시와 결혼이주여성 출신인 이자스민씨가 출연한 영화 를 두고 하는 말이다.
교육평가원은 강제가 아니라 단지'권고'라고 말하고 있지만 지금까지의 관례로 미뤄 사실상 강제 삭제 지시나 다름없다. 무시하면 8월에 있을 최종 검정에서의 통과가 불가능할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교육평가원은 이번 수정·보완 요청이 과목별 편찬상의 유의점과 검정기준에 따른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교육적 중립성 유지를 위해 교과서가 정치적, 파당적 또는 개인적 편견을 전파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공정하고 교육적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다만 정치인이 됐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사람 작품까지 아예 교과서에서 빼야 한다는 발상은 이해하기 어렵다. 창비에서 출판하는 중학교 1학년 국어 등 8종에 실린 도종환씨의 시와 산문들은 청소년들의 정서와 상상력, 언어적 표현력을 키우는 서정적 작품들로 교과서 집필자들이 학업성취도에 맞춰 신중히 선정한 것들이다. 정치적 색깔이나 파당성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다문화가정을 다룬 영화 와 이자스민씨의 출연 내용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작품만이 교과서 게재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아무리 뛰어난 문학성과 교육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노골적인 친일행적이 있는 작가의 작품은 교과서에 싣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친일과 지금 문인들의 정치활동은 명백히 다르다. 교육평가원의 잣대대로라면 교과서에 실을 수 있는 시와 소설, 그림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아무리 봐도 교육평가원의 특정인 작품 배제 요구는 과잉반응이다. 자칫 다른 의도가 숨어있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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