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ㆍ중소건설업계에 공멸 위기감이 엄습하고 있다. 금융당국의 구조조정 및 퇴출 리스트(17곳)에 포함된 기업은 물론, 이번 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은 건설사들조차 언제 닥칠지 모를 연쇄 부도 공포에 가슴을 졸이고 있다. 이미 내로라하는 중견건설업체 상당수가 한번 이상의 워크아웃 경험은 기본이고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는 실정. 중견 건설업계에선 '워크아웃은 필수, 법정관리는 선택'이란 자조 섞인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
8일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시공능력평가 상위 150위내 건설회사 가운데 7월초 현재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 등 구조조정이 진행중인 업체는 모두 25개사(워크아웃 18곳, 법정관리 7곳)에 달한다. 6곳 중 1곳 꼴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8년과 2009년 워크아웃(7곳)과 법정관리(1곳)가 진행중인 업체는 모두 8곳에 불과했지만 이후 지속된 건설경기 침체로 구조조정을 받는 건설기업수도 해를 거듭하며 크게 늘어난 것이다.
문제는 건설ㆍ부동산 경기 침체가 장기화함에 따라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 등 구조조정 작업에 들어가진 않았지만 벼랑 끝 위기에 직면한 건설사들이 부지기수라는 점이다. 당장 이번에 금융감독원이 구조조정 및 퇴출 리스트에 올린 17개 건설사 중 시행사 15곳을 제외한 2곳이 추가로 워크아웃에 들어가야 할 처지다.
특히 재기를 위해 채권단 관리 아래 워크아웃에 들어간 중견 건설회사들이 구조조정 과정을 이겨내지 못하고 법정관리로 추락하는 사례도 거듭되고 있다. 올 들어서만 월드건설 풍림산업 우림건설에 이어 벽산건설이 워크아웃을 진행하다 법정관리로 내몰렸다. '구조조정 = 퇴출'이라는 얘기까지 나오는 이유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업계에선 채권단이 정작 워크아웃 기업 지원에는 인색하고 채권회수에만 열을 올린다는 볼멘 소리가 터져 나온다. 한 중견건설업체 재무담당 임원은 "워크아웃을 하느니 처음부터 법정관리로 가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며 "사업부지와 사옥 등 알짜 자산은 모두 매각됐고 껍데기만 남아, 살아는 있어도 재기를 위한 신규 사업엔 발목이 잡혀 생존을 장담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때문에 건설업계는 채권금융기관이 워크아웃 기업을 적극 지원할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건설업계 지원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자 금융당국도 다음달까지 종합대책을 마련하고 중소ㆍ중견 건설사 조기 유동성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지난 6일 "건설업과 관련해 유동성을 지원하는 등 종합적인 지원대책을 늦어도 8월 안에는 발표할 것"이라며 일시적으로 유동성 위기를 겪는 건설사에 대한 지원을 서로 떠넘기는 과정에서 회생 가능한 회사가 무너지는 상황을 차단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김 위원장은 "(은행들이) 나만 살겠다고 나 몰라라 하는 것은 안 된다"며 "그간 (워크아웃 기업 지원을) 어떻게 운용해왔는지 살펴본 뒤 가이드라인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전태훤기자 besa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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