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4월 시행된 19대 총선에서 인기를 모았던 ‘정치인 펀드’가 대통령 선거 때도 등장할 전망이다. 법정선거비용을 기준으로 하면 무려 560억원짜리 펀드다.
8일 정치권과 금융권에 따르면 대선 출마를 선언한 민주통합당 문재인 상임고문 측은 “만약 대선 후보로 확정되면 당과 협의해 대선자금 마련을 위한 펀드 조성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치인 펀드’는 일반 펀드와는 성격이 다르다. 펀드라는 이름은 달고 있지만 사실상 법정선거비용 마련을 위해 다수의 지지자들에게서 소액씩 공개 차입하는 대출이라고 보면 된다. 선거 후 60일이 지나 법정선거비용을 보전 받으면 시중금리 수준의 이자를 얹어 되갚아주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선거에 나가 득표율 15% 이상이면 법정선거비용 전액을, 10~15%면 법정선거비용의 50%를 보전 받는다.
주로 펀드를 설정한 정치인의 지지자들이 모금에 참여하기 때문에 선거비용 마련은 물론 지지층을 확고히 묶는 데도 도움이 된다. 투자자 입장에서도 지지하는 정치인을 후원할 수 있는데다 원금에 이자까지 붙여 돌려받는 효과가 있다. 정치인들이 정치생명을 걸고 펀드를 만드는 만큼 득표율이 낮더라도 떼일 염려가 거의 없다. 성공만 한다면 정치인과 투자자 모두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펀드인 셈이다.
정치인 펀드의 물꼬를 튼 인물은 유시민 통합진보당 공동대표. 유 대표는 2010년 경기도지사 선거에 출마하면서 선거비용 고민 끝에 ‘유시민 펀드’를 출시했다. 당시 유 대표 측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펀드 형식의 비용 모집이 가능한지 문의했고, 선관위는 “금융기관의 대출금리나 법정이자율 등 통상적인 이자율과 비교해 현저히 낮지 않으면 무방하다”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그 해 4월 20일 출시된 유시민 펀드는 불과 3일만에 5,300여명에게서 40억원이 넘는 자금을 빨아들였고, 선거 후 투자자들에게 약속한 금리로 돌려줬다.
지난해 10ㆍ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도 박원순 후보가 정치인 펀드를 통해 법정선거비용 38억원을 마련했다. 올해 4월 총선 때는 강기갑, 김영환, 강용석 등 여야를 막론하고 30여명의 후보자가 펀드를 조성해 톡톡히 재미를 봤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