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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제가 살고 싶은 집은' 별난 건축가와 푸근한 국어선생님…소통으로 지은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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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제가 살고 싶은 집은' 별난 건축가와 푸근한 국어선생님…소통으로 지은 집

입력
2012.07.06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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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살고 싶은 집은/이일훈 송승훈 지음/서해문집 발행ㆍ320쪽ㆍ1만8000원

글로 짓기 시작해서 시멘트로 발라 집을 완성하기까지 '900일간의 기록'. 건축가와 건축주로 만난 두 남자가 하나의 집을 완성하기까지 재료 선택부터 완공에 이르는 과정을 단계별 설계 도면을 곁들여 소개하는 이 책은 분명 집에 관한 것이다. 동시에 그 공간에 살 사람과 공간을 선사하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불편의 미학'을 역설하는 건축가 이일훈에게 고등학교 국어교사 송승훈이 집을 만들어 달라고 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어떤 집을 꿈꾸는지, 어떻게 살기를 원하는지 문장으로 써 보면 어떻겠냐는 이씨의 제안을 송 교사가 흔쾌히 받아들이면서 2005년 8월부터 두 사람은 82통의 이메일을 주고 받는다. "많이 덜어내고 추려" A4용지로 208쪽 분량이라니 남자들의 수다가 대단하다. '겨울에도 깨금발로 이 방과 저 방 사이를 종종거리며 걷는 일이 재미있을 것 같다'는 등 집주인의 사소한 단상에도 독수리 타법의 이씨가 꼬박꼬박 정성스런 대꾸를 하며 교감했는데, 이걸 묶으니 책이 됐다.

처음엔 의뢰인과 건축가로 직능에 충실한 질문과 답변이 오가나 차츰 둘 사이에 뜨뜻한 정서가 흐른다. 불화했던 아버지며 수년간 사귀었으나 결혼 직전 집 때문에 헤어진 연인, 군대 간 늦둥이 아들과 생일상을 차려주겠다는 어머니에 대한 애달픈 마음 등 내밀한 사연까지 털어놓게 된다. 집의 완성을 고대하면서 책장을 넘기는 동안 펼쳐지는 이야기를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건축계 최고 글쟁이로 꼽히는 이씨와 책 사랑이 지극한 국어교사가 주고받는 글의 향기도 그윽하다.

왜 그런 소통법을 제안했냐고 묻자 이씨는 "작업하는 시간을 아끼려던 것인데 제 꾀에 제가 당한 셈으로 시간을 훨씬 더 빼앗겼다"며 껄껄 웃었다. 그러면서 조금은 별난 건축가인 자신의 생각을 이해해 준 건축주를 만난 건 "복"이라고 말했다. '하늘 담은 성당' '자비의 침묵 수도원' '기찻길 옆 공부방' 등을 설계한 그는 상식과 대척점에 선 건축학개론을 가진 건축가다. 그동안 불편하게 살기, 밖에서 살기, 작은 공간을 쪼개어서 늘려 사는 '채나눔' 설계론을 주창해 왔다.

"근대 건축의 교조적 이념 중 하나가 '모든 동선은 짧을수록 좋다'죠. 그런데 먼 것이 유익할 때도 있거든요." 방과 방의 거리를 되도록 늘리는 것은 그의 독특한 건축 철학. "모든 집들이 빌딩도 그렇고 복도에서 모든 방을 들어가요. 그런데 제 설계는 이 방을 거쳐 저 방으로 가는 식이에요. 좀 불편하지만 생각할 수 있는 거리들을 만드는 거죠." 그는 "현대 건축이 잃어버린 게 참 많은데 그 중 하나가 내부 공간의 유기적 연결"이라고 했다. 안으로 꽁꽁 싸매는 식이 아니라 바깥까지 공간을 연장하는 건축 방식을 추구한다. 이 집 역시 겉모습은 영락없는 현대식이지만 모든 방에서 바깥으로 쉽게 나갈 수 있으며, 2층에도 건물에 둘러싸인 안마당과 뒷마당이 있는 한옥식 구조다. "열평 스무평짜리 아파트에서 집이 좁아서 발코니를 확장하는 것은 필요해요. 근데 50평 살면서 발코니를 튼다는 건 무개념이죠. 그 공간을 외부로 가꾸면 삶이 더 윤택해지는데. 가을 발코니에서 책 읽는 거 생각만 해도 즐겁지 않나요."

이씨는 수십 권 건축 책을 독파한 송교사가 찾아낸 이상적 건축가. 본인보다 한 술 더 떠 집을 아예 열고 이웃과 더불어 살기를 실천하는 집주인의 취향대로 집을 지어줬다. 그렇게 나온 게 이름도 근사한 '잔서완석루(殘書頑石樓ㆍ낡은 책이 있는 거친 돌집)'다.

마음에 드는 집을 짓고 혼자 쓰기 아까워 기회 되는 대로 교사 모임에 공부 자리로 집을 내주는 넉넉한 인심의 송 교사를 꼭 닮은 집이다.

주택을 지었다면 으레 몇 평이냐, 평당 얼마 들었냐고들 묻지만, 이 책을 덮을 즈음엔 진짜 중요한 건 그것이 아니구나 하고 무릎을 치게 된다. 이씨 역시 "집 이전에 사람과 사람이 대화하며 소통하는 것, 믿고 속내를 털어놓고 모르는 걸 묻고 답하는 과정으로 읽어줬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잠시의 지체도 못 참는 빨리빨리 시대에 유별난 양반들이 느릿느릿 지은 집은 어쩌면 인생을 말하는 듯해 퍽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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