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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View/ 삶에 지친 아빠들 놀이에 눈뜨다…취미용품시장 '불황속 호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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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View/ 삶에 지친 아빠들 놀이에 눈뜨다…취미용품시장 '불황속 호황'

입력
2012.07.06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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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사에 근무하는 30대 후반의 이모 과장은 최근 130여만원을 들여 무선조종(RC)자동차인 '스케일 RC카'를 구입했다. 실제 자동차와 같은 모습으로 정밀하게 축소 제작한 차체와 조종기 등 주행이 가능한 기본 세트가 80만원, 세밀한 부가 기능을 구현하는 '멀티 펑션 유닛'에 50만원을 추가로 들였다. 평일 퇴근 후에는 아들과 RC카를 조립하고 주말이면 가족 모두 한강공원에 나가 자동차를 조종하는 것이 삶의 즐거움인 그는 올 여름에는 무선조종 헬기에 도전할 계획이다.

아이파크 취미 전문관, 목표 2배 매출

경기침체의 여파로 전반적으로 소비가 잔뜩 움츠러들고 있지만 예외인 곳이 있다. 프라모델(로봇모형), 캠핑, 악기, 익스트림 스포츠 등 이른바 취미 용품 시장이다. 마니아 층을 중심으로 탄탄한 성장세가 이어자, 백화점 등 유통업계도 관련 전문 매장을 강화하며 발 빠른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서울 용산 아이파크백화점의 '토이&하비' 테마관이 오픈한 것은 지난 5월. 아직 두 달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마니아 층에게 입 소문이 나면서 당초 목표의 2배가 넘는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 곳은 무선조종 자동차와 헬기, 프라모델, 완구와 로봇, 봉제인형, 자동차 용품에 이르기까지 취미∙장난감과 관련된 '마니아 상품군'이 망라돼 있다.

백화점 관계자는 "800평 규모에 15개 브랜드가 들어선 국내 백화점 최초, 최대 규모의 취미 전문숍"이라며 "취미와 여가에 투자하는 마니아층이 늘어남에 따라 상품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한편, 기존 브랜드들도 한 곳으로 모아 아예 취미 전문숍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롯데마트의 '토이저러스' 등 어린이 대상 장난감 전문점과 달리, 이 곳의 주요 고객층은 20대 후반~40대 초ㆍ중반의 남성들. 실제 이곳에서 판매되는 상품들은 장난감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전문성을 갖춘 제품들이다. 가격도 고가의 것이 많다. 풀세트가 200만원에 이르는 RC 탱크는 엔진 소리, 전ㆍ후진 중 포신 회전, 포 사격 시 반동까지 구현해 실탄 발사만 빼고는 모든 것이 실제 탱크와 다를 바 없다.

수십m 상공에서 항공 촬영을 할 수 있는 RC 헬기와 비행기, 활주로를 통해 진짜 비행처럼 이착륙이 가능한 RC 전투기도 있다. 프로펠러가 4개 달린 '쿼드 콥터'는 일반 헬기와 모양이 다르지만, 고화질 카메라를 장착해 스마트폰으로 화면을 보면서 사진과 동영상을 찍을 수 있어 인기가 높다. 화면에 나타나는 실제 지형지물에 가상의 공중폭격을 할 수 있는 증강현실 게임까지 가능하다. 물 위를 다니는 RC보트, 엔진 없이 돛을 무선 조종해 움직이는 RC요트도 나와 있다.

아이파크백화점 관계자는 "마니아 고객 중에는 다른 RC제품의 부품을 떼어 모형 잠수함 속에 조립해 넣어 'RC잠수함'을 만드는 실력자도 있다"면서 "매장 직원들도 전문가 수준의 실력을 보유하고 있고, 초보자들에게는 매장에서 무료 교육을 해 준다"고 말했다.

마니아가 즐기던 취미에서 대중화

극소수 마니아들의 취미였던 RC카와 RC헬기 등이 대중에게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1~2년 정도. 고도로 정교한 제품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일본과 프랑스 등 선진국에서 주로 생산돼 가격이 비쌌지만, 5년 전부터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저렴한 제품이 나오기 시작했다. 10만원도 되지 않는 입문용 제품이 많이 나오면서 대중화가 시작된 것.

요즘은 어린이들도 무선조종의 세계에 대거 입문하고 있다. 아빠와 함께 무선조종 기기들을 조립하고 조종하는 자녀들이 기특하게도 인터넷이나 게임을 멀리하고 집중력이 향상되는 것을 엄마들이 본 것이다. 여기에 더해 역학과 기계공학 등 과학적 지식까지 습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입소문을 통해 알려지면서 엄마들의 성원 아래'초등학생 RC 마니아'가 눈에 띄게 늘었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30~40대 남성 일색이었던 RC 조종대회 예선에 최근에는 초등학생들이 몰리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렇게 저변이 확대되면서 최근 세계 대회에서 우리나라의 초등 2학년생이 당당히 2위에 입상하기도 했다.

취미용품 시장의 성장은 악기 매출에서도 확인된다. '쎄씨봉' 인기와 오디션 열풍 등에 힘입어 늦은 나이에 다시금 악기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이 백화점 악기 전문관은 올 상반기 전년 대비 35% 이상 신장하는 등 최고의 효자 상품군으로 떠오르고 있다. 과거 인기 악기였던 피아노 대신 색소폰과 기타, 드럼 등 '남성 악기'의 신장 폭이 두드러지고 있다. 힙합 음악을 연주하는 '디제잉'(DJing) 장비처럼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악기마저 인기가 치솟고 있다.

캠핑 관련 상품의 인기는 폭발적이다. 올 여름 정기세일 초반 10일간 매출이 전년 대비 53.8% 신장했다.

'현재의 행복 추구' 가치관 영향

불황이 장기화하면서 의식주에 쓰는 돈은 최대한 줄이는 사람들이 취미에는 아낌없이 투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들의 가치관이 '현재의 행복 추구'로 변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의 최우선 관심사는 '재테크'였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부자 되세요"라는 슬로건은 2006년까지 불었던 부동산 광풍, 2007년에 꼭지점을 찍었던 '펀드 열풍'에서 정점을 이뤘다. 하지만 신혼부부가 전셋집 하나 마련하는 것도 어려울 정도로 지나치게 비싸진 집값, 2008년 이후 찾아 온 장기 침체 등으로 미래를 위해 현재의 행복을 저당 잡힐 이유가 없다는 가치관이 자연스레 형성됐다는 설명이다.

백화점 관계자는 "최근 혜민스님의 등 현재의 소박한 행복을 추구하는 서적들이 인터넷 서점 등에서 장기간 베스트셀러를 기록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풍조를 반영한다"면서 "유통업계에서도 취미와 여가 편집매장을 강화하는 등 관련 마케팅을 더욱 활발하게 전개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사진=홍인기기자 hongi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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