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의 모임 끝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두 방울 떨어지고 말겠지 하며 그치길 기다릴 작정으로 먹다 남은 카푸치노를 리필 했는데 어느 순간 굵어진 빗방울이 커튼도 아니면서 창문을 죄다 가리고 있었다.
젖는 것보다는 늦는 게 낫다 싶어 하염없이 카페에서 수다를 떨어댔다. 하다하다 할 얘기가 없으니 비 오는 날 차려입고 나온 여자들의 옷차림에 대한 뒷담화가 이어졌다. 아무리 먹고살기 힘들어도 옷은 사 입고 신발은 사 신는지 언밸런스하게 앞뒤 길이가 다른 색색의 티셔츠에 하의실종이라 할 만한 반바지들, 컬러별 고무장화를 신은 여자들이 흔하면 흔하다 할 정도로 거리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그 순간 사는 게 곧 일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어떤 필요에 의해 뭔가를 사야만 사는 게 되는 삶, 평생 소비 속에 소비되는 삶, 그 가운데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친구들의 지갑이 제각각 눈에 밟혔다. 저 안에 종잇장 두둑 채우려고 아등바등 우리들 매일같이 조금씩 늙어오지 않았던가.
비가 거의 그쳐가기에 카페를 나오는데 주인이 여분의 우산이라며 두 개를 내밀었다. 내가 덩치가 크니까 장우산은 내 꺼, 하면서 친구는 나 몰라라 욕심껏 큼직하고 단단한 놈을 골랐더니 웬걸, 겉보기와는 다르게 뚝 하고 부러진 우산살이 내 어깨 위로 떨어지는 것이었다. 결국 고장 난 우산을 버려둔 채 친구의 우산에 꼽사리 붙어 택시정류장으로 향했다.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고 있었다.
김민정 시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