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울 노원구의 올해 예산은 4,223억원. 이 가운데 복지 예산은 2,203억원(52.2%)으로 전체 예산의 절반이 넘는다. 인건비와 운영비 1,100억원을 빼면 약 900억원 정도가 남는다. 노원구 관계자는 “남는 900억원에서 도로 기반시설 운영경비 등을 제외하면 구의 자체사업을 위해 쓸 수 있는 돈은 100억원 미만”이라고 말했다.
#2. 올해 영유아 무상보육 예산으로 확보한 85억원이 소진돼 서울시로부터 20억원의 긴급 지원을 받은 서초구의 올해 총 예산은 2,785억원이다. 여기서 복지 관련 예산 772억원을 포함 인건비 등 법정의무경비 2,100억원을 빼면 685억원. 도로 보수 등 시설 운영경비 540억원을 제외하면 남는 예산은 145억원뿐이다. 서초구 관계자는 “잘 사는 동네라 예산이 풍족할 거라고들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청소용역비의 경우 9월까지만 예산을 편성하고 추경을 통해 부족분을 메워야 할 정도”라고 말했다.
무상 보육, 무상 급식 등 보편적 복지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높아지면서 정부가 각종 사회복지 사업들을 확대하고 있으나 복지 사업의 규모가 커질수록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상태가 악화되고 있다. 정부가 추진한 대부분의 복지 사업이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일정비율로 재정을 분담하는 ‘매칭펀드’ 방식으로 집행되기 때문이다. 매칭펀드는 특정 사업을 위해 중앙정부가 100억원을 투입하면 지자체도 이에 대응해 비슷한 규모의 예산을 편성해 집행하는 방식이다.
5일 서울시에 따르면 이른바 ‘보육 대란’을 낳은 영유아 보육비 지원 사업 외에도 기초생활수급자 생계ㆍ주거ㆍ교육 지원, 기초노령연금, 한부모가족자녀 양육비 지원 사업, 중증장애인연금, 저소득층 자활근로사업 등 대부분의 복지 사업이 매칭펀드 방식으로 집행되고 있다. 영유아보육비의 경우 국비와 지방비의 기본 분담비율은 50:50이었으나 서울은 재정 여건이 상대적으로 좋다는 이유로 중앙정부가 20%, 서울시와 자치구가 80%를 부담했다.
매칭펀드의 기본 취지는 정부 사업에 대해 지자체도 예산을 분담하면서 사업의 결정권을 갖고 지역 실정에 맞는 특성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예산 분담 비율을 정하면 지자체 의지와는 무관하게 의무적으로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예산 분담 비율을 정할 때 지자체와는 협의도 거치지 않는다. 정부는 복지 사업으로 생색을 낼 수 있지만 그 부담을 떠안는 건 지자체”라고 지적했다. 서울의 한 자치구 관계자도 “국가 사업에 들어가는 예산 비중이 너무 높아 구청장 마음대로 도로 깔기조차 힘들다. 지역 실정에 맞는 자체 복지 사업은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고 말했다.
국회입법조사처도 올해 4월 펴낸 보고서에서 “매칭펀드 방식의 국고 보조금 증가를 통한 사회복지 확대는 국가적 표준 복지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지역의 다양성을 반영하기 어렵고, 지방의 자율적 결정권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준규기자 manbo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