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번호라도 찍히면 받는 게 내 생리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착한 척을 버려버렸다. 놀라운 건 내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발 빠른 대처를 하는 전화기 너머의 상대들이다. 누가 봐도 그런 유의 전화려니 하는 번호를 뒤로 감춘 채 혹시 아는 누구의 바뀐 번호일까 설렘을 가장한 휴대폰 번호로 고객님을 외치는 목소리들.
대출을 받고 땅을 사고 보험을 들라는 사람들. "여보세요, 네, 아닙니다.", 일관이던 내 레퍼토리가 어느 순간 "그런데요, 왜요, 전화 하지 말라니까요.", 짜증 일색이 되어버렸으니 이도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상담원들에게 짜증낸 것이 못내 불편해진 나는 뒤늦게 마음을 고쳐먹기도 했더랬다.
그러던 어느 밤 자정 넘어 문자 두 통이 왔다. 꿔간 돈을 갚아라, 네가 도망갔다고 내가 못 받을 줄 아느냐, 죽이겠다, 를 요지로 한 내용의 반 이상이 욕이었다. 리듬감을 살려 그 욕들 실실 따라해 보다 문득 호기심이 일어 답장을 보냈다.
"저를 아세요?" 어떤 욕이 또 올까 기대하던 차에 문자가 도착했다. "죄송해요. 누가 제 번호로 여기저기 문자를 돌리나 봐요. 제 계좌에서 돈도 빼갔어요. 혹시 여성이신가요? 몇 살이신가요? 저는 인테리어 합니다." 이건 또 뭐하자는 시추에이션이람. 휴대폰의 신기종은 예상이라도 하지, 신종 사기는 바퀴벌레처럼 영 박멸이 안 되나 보다.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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