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4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밀실 처리 논란과 관련해 진상조사를 실시한 뒤 책임자를 처벌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은 민심을 악화시킨 이 문제를 계속 방치할 경우 임기 말 레임덕(권력누수 현상)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위기감 때문으로 보인다.
더욱이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이 저축은행 로비 의혹으로 검찰에 소환되면서 '정권에 조종이 울렸다' '서리가 내렸다'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이어서 청와대는 국면 전환의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
이 대통령은 지난 2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이 협정은 이미 러시아를 비롯한 24개국과 체결을 했고 앞으로 중국과도 체결이 필요한, 국가적으로 도움이 되는 협정인데 긴급안건으로 국무회의에 상정하는 등 충분한 여론수렴 과정 없이 처리할 일이 아니었다"며 강하게 질타했다.
청와대는 이 대통령의 질책 후 곧바로 하금열 대통령실장 지시로 민정수석실 공직기강팀을 중심으로 협정의 처리 과정에 대한 경위 조사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국민 여론을 이반시킨 이 사안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며 "어떤 식으로든 비정상적으로 처리된 과정에 대해 책임지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또 외교부 등 정부 부처들의 책임 떠넘기기 행태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국정 수행에 있어 청와대와 정부는 일심동체이어야 하는데 안이하게 업무를 처리하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서로 떠미는 양상을 그대로 둘 경우 남은 임기 동안 제대로 국정을 운영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책임자를 엄중히 문책함으로써 공직기강을 다잡는 기회로 삼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한편으로 청와대의 진상조사와 책임자 문책은 야당의 정치 공세를 의식한 선제적 조치라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민주통합당 등 야권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의 폐기와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며 대선을 앞두고 정치 이슈로 본격적으로 제기할 태세여서 논란을 조기에 매듭지어 야당의 공격 예봉을 피할 필요가 커진 것이다.
국익을 위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이 꼭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있는 청와대는 야당 등 정치권의 공세에 밀릴 경우 협정 체결을 재추진할 동력이 없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우려하고 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협정 문제와 관련해 사과해야 한다'는 이해찬 민주당 대표의 요구에 대해 "총리가 무게가 있는 자리인데 이미 (김황식 총리가) 사과했지 않았느냐"며 "다분히 정치 공세 아니냐"고 말했다.
김동국기자 dk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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