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대통령의 친형이 대통령 재임기간 중 최초로 검찰에 소환된 3일, 대검찰청 청사 앞은 100여명의 취재진과 수십명의 저축은행 사태 피해자들로 북적였다. 이날 오전 10시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에 모습을 나타낸 이상득(77) 전 새누리당 의원은 검은색 정장에 하늘색 넥타이를 맨 깔끔한 차림이었으나 표정은 잔뜩 흐린 날씨만큼이나 어두웠다.
이 전 의원은 청사로 올라가던 도중 계단에서 다리를 삐끗한 듯 잠시 휘청거리기도 했지만, 동행한 변호사의 부축을 받고 포토라인 앞에 섰다. 한동안 아무 말이 없던 그는 심경을 묻는 취재진에게 "정말 가슴이 아프다"며 입을 열었다. '돈 받은 사실을 인정하느냐' '받은 돈을 대선자금으로 썼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대검 조사실에) 가서 성실하게 답변에 응하겠다"고 말했다.
이 전 의원은 포토라인을 벗어나 현관 회전문으로 들어가기 직전, '대통령 친형으로 검찰 조사를 받게 됐는데 청와대에 한 마디 해달라'는 마지막 질문을 받고는 "가슴이 아프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힘없이 되뇌었다.
저축은행 사태 피해자들은 이 전 의원이 청사 안으로 들어간 뒤에도 대검 정문 밖에서 "저축은행 피해자들은 피눈물 짓고 있는데, 당사자들은 법정에서 거짓말 잔치만 잘하면 집행유예에 그친다. 대한민국 법은 왜 존재하느냐"는 등 구호를 계속 외쳤다.
이 전 의원은 대검 청사 11층 조사실로 가기 전 중수부 첨단범죄수사과장실에서 최운식 저축은행비리합동수사단 단장과 5분간 면담했다. 간단히 물 한 잔을 마신 이 전 의원은 최 단장에게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조사실로 향했다.
이 전 의원에 대한 조사는 중수부 1123호 조사실에서 이뤄졌다. 1123호 조사실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조사를 받았던 같은 층의 특별조사실(1120호ㆍ51m²)보다 작은 규모(25m²)로, 이 전 의원과 함께 이 대통령의 최측근 실세로 불렸던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조사를 받았던 곳이다.
이 전 의원은 비교적 조사에 성실히 응하면서 금품수수 혐의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명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점심과 저녁은 구내식당에서 배달된 설렁탕으로 해결했다. 수사팀은 윤대진 합수단 1팀장과 주영환 2팀장이 번갈아 이 전 의원을 추궁했고, 조사는 이날 자정까지 이어졌다. 주 팀장은 미래저축은행과 코오롱그룹 고문료 부분을, 윤 팀장은 솔로몬저축은행 부분 조사를 각각 맡았다.
이날 조사에 동석한 법무법인 광장의 서창희 변호사는 최재경 대검 중수부장과 연수원 17기 동기다.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장 출신인 서 변호사는 국회의원 비례대표 후보 공천을 대가로 이 전 의원에게 2억원을 건넸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김학인(49ㆍ구속기소) 한국방송예술진흥원 이사장의 변호도 맡고 있다. 이 전 의원과 서 변호사 등은 소환 일정이 조율된 지난달 28일 이후 서울 모처에서 수사에 대비한 모의연습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팀도 이날은 최대한 말을 아끼는 모습이었다. 합수단 관계자는 이 전 의원의 구체적 혐의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한 채 "태산이 높다 해도 하늘 아래 뫼 아니겠느냐.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는 고사성어처럼, 산의 흙을 열심히 떠 넘기다 보면 언젠가 길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비유적으로 말했다.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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