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득(77) 전 새누리당 의원이 3일 검찰에 소환되면서, 대통령의 친인척이 권력형 비리로 사법처리되고 정권의 레임덕이 가속화하는 악순환이 재연됐다. 전 정권들의 비극적 결말을 똑똑히 지켜보고도 또 다시 비리의 수렁에 빠진 권력 주변의 인사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정권마다 출범도 하기 전에 감찰 계획을 세우고 "친인척 부정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것이 관례처럼 됐지만, 친인척 비리에서 자유로웠던 역대 대통령은 사실상 전무하다. 6공화국 이후만 보더라도 정권마다 '6공 황태자' '소통령' '홍삼 트리오' '봉하대군' '영일대군' 등으로 불린 실세 친인척이 등장했고, 모두 정권 말이나 다음 정권 초기에 검찰 조사를 받거나 사법처리의 대상이 됐다. 청와대는 그때마다 속수무책이었다.
대통령의 친형으로 구속되기에 이른 첫 인물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큰형 전기환씨다. 그는 노량진수산시장 운영권 강제 교체에 개입한 혐의로 1988년 11월 구속됐다. 전 전 대통령의 나머지 가족들도 권력형 비리에 가세하며 가히 '백화점식 비리'의 전형을 선보였다. 동생 전경환씨는 새마을운동중앙본부 회장으로 재직하며 공금 70억여원을 빼돌린 혐의로 실형을 받았고, 사촌 형 전순환씨도 골프장 허가를 미끼로 3,700만원을 받았다가 재판에 넘겨졌다. 사촌동생 전우환씨는 양곡가공협회장 시절 뇌물 수수, 처남 이창석씨는 탈세 및 횡령, 처삼촌 이규광 당시 광업진흥공사 사장은 대형 어음 사기 사건에 연루돼 모두 구속됐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처조카로 '6공 황태자'로 불린 박철언 전 정무장관은 슬롯머신 사업자에게서 6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김영삼 정권이 출범하던 해인 1993년 구속됐고, 딸 노소영씨는 외화 밀반출 혐의로 세 차례 검찰 조사를 받아야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당선되기가 무섭게 '친인척 정치 금지' 원칙을 강조했고, 가족들에게 "돈 싸들고 접근하는 똥파리들을 조심하라. 단돈 100만원만 받아도 구속시킬 것"이라고 경고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 역시 수난을 피해가지 못했다. '소통령'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차남 김현철(여의도연구소 부소장)씨가 기업인들로부터 66억원을 받고 12억여원의 증여세를 포탈한 혐의로 1997년 6월 구속되면서 김영삼 정권은 사실상 '식물정권'이 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통령 친인척 부당행위 금지법'을 공약으로 내걸 정도였다. 청와대가 민정수석실 등을 통해 친인척 관리 업무를 강화한 것도 이 시기부터다. 하지만 차남 김홍업, 삼남 김홍걸씨가 기업체로부터 각종 청탁과 함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장남 김홍일씨도 참여정부 초기 나라종금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1억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불구속 기소되면서 대통령 아들 3형제가 모두 사법처리되는 불명예를 안았다.
도덕성을 정치의 밑천으로 삼았던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친인척 비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참여정부는 대통령의 친가 8촌, 외가 6촌까지 관리 리스트에 올리고 사돈과 종친회를 포함해 약 900명을 감시했다. 하지만 '봉하대군'으로 불리던 노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70)씨가 세종증권 매각 로비에 개입해 29억여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등잔 밑이 어두웠던 셈이다. 현재 대검 중수부는 13억원 해외 밀반출 사건과 관련해 노 전 대통령의 딸 노정연씨에 대해서도 외환관리법 위반 혐의로 수사 중이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부인 김윤옥 여사의 사촌언니 김옥희씨가 공천 청탁 명목으로 30억원을 받아 구속됐으며, 급기야 큰형 이상득 전 의원이 이날 대검 중수부에 소환되며 궁지에 몰렸다. 앞선 오욕의 역사에서 뭘 배웠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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