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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박근혜 미래권력의 뒤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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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박근혜 미래권력의 뒤안

입력
2012.07.02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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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지난해 12월 17일 오전 8시30분에 사망했다. 그로부터 만 하루가 더 지난 18일 오전 이명박 대통령과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는 이런 사실을 까마득히 모른 채 교토 영빈관에서 예정된 일정대로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 대통령은 회담에서 노다 총리에게 군대 위안부 해결을 위한 정치적 결단을 촉구했다. 그러나 노다 총리는 되레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세운 소녀상 철거를 요구했다.

김정일의 돌연한 사망은 북한 급변사태로 이어질 수 있는 중대 사건이었다. 한반도, 나아가 동북아 전체의 안보에 심각한 불안을 초래할지도 모를 상황이 벌어져 있을 때 한ㆍ일 정상은 해묵은 위안부 문제로 티격태격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정일 사망 충격 속에 묻혀 지나갔지만 돌이켜보면 정말 황당하고 어이없는 일이다.

이 일은 한일 간에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의 필요성을 재확인한 주요 계기가 됐다. 질서 있고 예측 가능한 북한의 변화가 바람직하나 북한의 핵ㆍ미사일 위협이나 급변사태 등에 대비해 주변국간 대북정보 공유 등 협력체제를 갖추는 것도 꼭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상당한 대북정보 자산을 보유한 일본은 중요한 협력 대상국이다.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체결 못할 이유가 없다. 우리나라는 이미 24개국과 정보보호협정을 체결했다.

그러나 독도와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를 그대로 두고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추진하기는 어렵다. 안보와 국민정서는 구별해야 한다지만 국민을 설득하고 이해를 구하는 과정과 시간이 필요했다. 더욱이 일본 극우세력은 최근"위안부 소녀는 매춘부" 등의 망언을 일삼고 주한 일본사관 앞 소녀상에 '독도는 일본땅'이라고 쓴 말뚝을 매달아 국민감정을 한층 악화시켰다. 이런 때에 밀실에서 군사협정을 밀어붙였으니 탈이 안 나면 오히려 이상하다.

이 소동은 여러 면에서 이 정부 출범 초 광우병 촛불시위를 촉발한 미국산 쇠고기수입 파동과 닮았다. 당시 한미FTA를 매듭 짓기 위해서는 미국산 쇠고기수입 조건 완화가 불가피했다. 그러나 미국산 수입 쇠고기에서 작은 뼛조각이 발견됐다고 전 언론이 대서특필하던 때였다. 그만큼 광우병에 민감했는데, 뼛조각 정도가 아니라 위험부위까지 포함해 수입제한을 한꺼번에 풀어버렸다가 그 사단이 벌어졌던 것이다.

새누리당이 한일군사협정 서명 1시간 30분을 앞두고 외교통상부장관에게 보류를 요청해 관철시킨 것은 광우병 촛불시위 트라우마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협정안을 즉석 안건으로 국무회의에 상정해 통과시킨 후에도 협정 체결의 불가피성을 들어 정부를 편들었던 새누리당이다. 하지만 한일군사협정 밀실 추진에 대한 비난여론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갑자기 입장을 바꿔 제동을 걸고 나섰다.

집권여당이 국민적 분노를 일으킨 정부의 독단적인 행위에 제동을 건 것은 잘한 일이지만 충분한 검토 없이 연말 대선을 의식해 정부에 서명 보류를 요구했다면 얘기가 다르다. 권력의 중심축이 청와대에서 여의도 새누리당사로 넘어갔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온다.'형님 비리'의혹과 민간인 불법사찰, 내곡동 사저 사건 등 각종 악재로 이명박 정부가 사실상 식물정부로 전락한 상태에서 총선 승리에 힘입은 박근혜 대세론은 한층 강고해진 권력 현실의 반영이다.

새누리당은 차기 전투기 선정, 인천공항 지분매각 등 이명박 정부의 국책 사업에도 제동을 걸고 나섰다. 여기엔 박근혜 전 위원장의 의중이 작용하고 있다는 게 정설이다. 박 전 의원장은 새누리당이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 보류 요청 직전 밀실 추진 등 절차상 문제에 강한 우려를 표시했다고 한다.

잘못된 정책은 바로 잡아야 한다. 하지만 정권 임기 말이라도 흔들림 없이 밀고가야 하는 정책도 있다. 그 판단 기준이 장기적 국익이 아니라 몇 달 남지 않은 대선에서 유력주자의 득표라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이계성 수석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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