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私)교육은 필요악이다. 잘만 활용하면 약이 되지만, 그렇지 못해 독이 되는 경우가 태반이다. 학원 등 사교육 기관의 '상술'에 놀아나는 학부모들도 적지 않다. 자녀의 사교육비를 대느라 부모들의 허리가 휜다는 건 이젠 새로운 얘기도 아니다. 정부가 대대적인 사교육 경감대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사교육비는 좀처럼 줄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사교육 제로를 표방하고 있는 교육시민단체 '사교육 걱정없는 세상'이 이번엔'선행학습 금지법' 제정 운동에 나섰다. 선행학습을 법으로 금지시키는 것이 사교육 근절의 핵심이라고 본 것이다. 이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이는 윤지희(51) 사교육 걱정없는 세상 공동 대표다. 그는 1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공교육과 학생 개인에게 미치는 폐해가 가장 큰 선행학습을 법으로 금지하는 것이 사교육을 없애기 위한 1순위 과제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4월부터 1만인 서명운동에 들어가 지금까지 3,000여명의 서명을 받았다. 4일부터는 100일 동안 서울 광화문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1인 시위 릴레이를 할 계획이다.
그는 선행학습을 금지시키지 않는한 사교육은 계속 학생과 학부모들을 짓누를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교육 시장의 대세가 선행학습이잖아요. 이를 추방하지 않고는 만연한 사교육을 바로 잡을 수 없어요."
선행학습이 필요한 학생도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굳이 법으로 강제할 필요까지 있겠느냐고 물었다. 윤 대표는 이에 대해 "사교육을 전면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적 효과가 없는 선행학습형 사교육만 규제하자는 취지"라고 했다.
영어와 수학 중심의 선행학습 열기는 실제로 도를 넘어섰다. "서울 대치동 등 전국 17곳의 사교육 과열지역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한 적이 있어요. 최소 1개월 이상 학교 진도 보다 빠른 선행학습을 하는 초중고 학생이 70%나 됐습니다. 사교육을 하는 대다수의 학생들이 선행학습형 교육을 받고 있다는 얘기지요."
문제는 이런 선행학습의 부작용이다.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겠다는 조바심으로 너도 나도 선행학습 학원을 다니지만 결과적으로 공부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리고 학원 의존도만 키우고 있어요. 줏대 없이 휘둘리는 학부모와 학생, 암암리에 행해지는 공교육 내에서의 선행학습, 거기다 우수한 학생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선행수업을 부추기는 학원들의 마케팅 전략까지 맞물리면서 어느 순간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올가미가 돼버린 거죠."
윤 대표는 "거리 서명을 받을 때마다 그런 부분에 대한 공감대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시민들이 스스로 찾아와 서명을 했어요. 더 이상 물러설 데가 없다는 위기의식과 어쩌다가 이지경이 됐냐는 분노가 함께 자리하고 있었어요. 이게 생생한 현실입니다."
윤 대표는 시민 서명이 끝난 뒤 주요 대선 후보들에게 선행학습을 금지시키는 법안을 제정해줄 것을 요청할 계획이다. 5일엔 국회에서 교육ㆍ법률전문가들의 검토와 자문을 거친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법률'(가칭) 시안을 발표한다.
글ㆍ사진=손효숙기자 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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