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로 쫓겨날 처지에 놓인 세입자들이 강제 철거에 반발해 천막 농성을 벌이자, 용역업체가 천막 바로 앞에 CCTV를 설치해 논란이 일고 있다. 재개발조합과 용역업체는 "방범, 화재예방 등의 이유로 설치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세입자들은 "인권과 사생활 침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경찰도 CCTV 설치 경위 조사에 나섰다.
29일 서울 마포경찰서와 염리공덕이주대책위원회 등에 따르면 용역업체 B사는 지난 12일 마포구 공덕동과 염리동 재개발지역인 마포로1구역 제55지구 내 빈 건물의 간판 기둥에 CCTV를 설치했다. 대책위가 농성을 벌이고 있는 천막에서 불과 12m 떨어진 곳이다. 대책위는 "인근에 있는 세입자들의 주거공간을 감시해 사생활 및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다분하다"며 "CCTV 철거 등 법에 따라 처리해 줄 것을 요구한다"는 내용의 진정서를 경찰에 제출했다.
발단은 지난달 9일 세입자 함모(49)씨의 거주지가 강제 철거당하면서 시작됐다. 대책위는 철거에 대한 항의로 같은 달 26일 함씨 집 앞에 간이 천막을 세웠고, 대책위 회원들은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55지구는 1만1,977㎡ 부지에 아파트 270세대가 들어설 예정으로, 보상 협의가 진행 중인 세입자 19세대가 남아 있다.
B사는 천막 쪽을 향하도록 CCTV를 설치하면서 '방범ㆍ화재예방ㆍ시설안전관리 목적으로 백범로 28길을 24시간 연속 촬영ㆍ녹화한다'는 내용의 안내판을 달았다.
하지만 대책위는 CCTV 설치가 '영상정보처리기기를 설치 목적과 다른 목적으로 조작하거나 다른 곳을 비춰서는 안 된다'는 개인정보보호법을 어긴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구청이 허가한 CCTV 2대(55지구 양쪽 끝에 각 1대)가 작동되고 있는데도 B사가 굳이 이곳에 CCTV를 또 설치한 점, CCTV가 천막을 바라보고 있는 점 등을 문제 삼고 있다. 대책위 관계자는 "천막을 드나들 때 CCTV가 똑바로 쳐다보는 것 같아 굉장히 불안하고, 여성 회원들은 특히 더 꺼린다"고 말했다.
재개발조합 측은 이에 대해 "구청 측이 빈 건물이 많고 노숙자와 청소년의 무단침입 등으로 우범지대가 될 수 있으니 방범활동 및 안전사고 대책을 세워달라고 요청했다"며 "천막이 설치된 골목이 주 출입구라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이곳에 CCTV를 설치했다"고 해명했다.
경찰은 대책위 관계자를 불러 조사한데 이어 CCTV 화면을 입수해 분석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CCTV 촬영 화면은 골목 입구와 도로까지 넓은 범위였고, 대책위 천막은 화면 중앙에서 약간 왼편에 나온다"며 "구청 등 관계기관과 협의해 이곳에 CCTV를 꼭 설치할 필요가 있었는지, 위치가 적절했는지 등을 따져 보겠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경찰 조사가 끝나야 판단할 수 있겠지만 설치 목적 이외 용도로 CCTV를 사용했다면 위법"이라고 말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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