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성향의 존 로버츠 미 대법원장이 자신과 이념성향이 다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건강보험개혁 판결에 찬성표를 던진 이유를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공화당 등 보수 진영은 "로버츠 대법원장이 자신의 정치 철학을 배신했다"며 충격에 빠졌다. 그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공화당 행정부 때 대법원장에 임명된 이후 낙태, 인종 법안 등에서 일관적으로 보수적 판단을 해 왔다. 그가 대법원 판결에서 진보진영에 가담한 것은 처음이다.
언론에서는 "정치적 배신이 아닌 전략적 선택"이라는데 무게를 싣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보수 성향이라고 평가 받는 대법원에 정치적 독립성을 부여하기 위한 실용주의적 선택"이라고 해석했다. 건보법을 위헌판결할 경우 편파논란과 함께 대선정국에서 동성결혼, 소수계 우대정책 등 중요 결정에 독립적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상황을 우려했다는 것이다.
미 법조계는 "대법원의 위신을 세우고 불필요한 정치적 갈등을 피한 현명한 결정"이라고 환영했다. 자말 그리니 콜롬비아대 교수는 "로버츠 대법원장은 대법원이 정치적 논쟁에서 한쪽 편을 들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대법원이 개인의 건강보험 의무가입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려 진보의 손을 들어주면서도 2014년까지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처벌 받도록 한 것은 거부해 보수의 입장도 고려했다"고 전했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뚜렷한 이념 차이를 보여온 오바마 대통령과 로버츠 대법원장의 관계가 개선될지도 관심거리다.
둘은 하버드대 법학전문대학원 동문이지만 다른 정치적 성향 때문에 사사건건 부닥쳤다. 오바마 대통령은 상원위원 시절부터 그가 이끄는 대법원의 판결을 비판해 왔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2009년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 선서를 주재하면서 실수로 오바마 대통령에게 선서문을 잘못 읽게 해 "고의 아니냐"는 구설수에 올랐다. 2010년 1월 국정연설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이 로버트 대법원장을 앞에 두고 '기업과 노조가 정당 및 정치인에게 직접 정치자금을 무제한 제공할 수 있다'는 대법원 정치자금법 판결을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박우진기자 panoram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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