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는 민주화운동으로 ‘날이 새고 해가 진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었다. 정통성 없는 군사정부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민주주의를 압살하던 그 암울했던 시대에 자유권의 확대와 민주주의의 쟁취를 위한 역사적 투쟁은 최대의 과제였다. 이러한 투쟁의 선봉에 서서 온몸으로 민주주의를 외쳤고, 그 투쟁의 과정에서 민주주의의 의미와 소중함을 학습하고 깨달았던 당시 민주화운동의 주역은 80년대에 대학을 다녔고, 지금은 우리나라의 경제사회 발전에서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40대들이다.
우리는 이들을 486세대로 부른다. 이들은 87년 6월 항쟁을 승리로 이끌었고, 이후 수년에 걸친 정치적 민주주의의 정착 과정에서 후배 세대들과 함께 민주화운동에 지속적으로 헌신했다. 90년대에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50년 만의 정권 교체로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외형상의 민주주의가 틀을 잡아가자, 대부분의 486세대들은 가장으로서 아이들의 부모로서 생업 전선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15년여의 세월이 흘러, 지금 이들의 대부분은 신자유주의 양극화 시대의 빡빡한 삶을 고달프게 살아가는 40대의 중년이 되어있고, 민생의 5대 불안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다.
첫째 일자리 불안이다. ‘사오정’이란 말처럼, 40대 중후반의 나이에 직장을 떠나는 경우가 허다하고, 그 후에는 할 일도 마땅치 않다. 인생 이모작은 여건이 허락하지 않는다. 둘째는 보육과 교육 불안이다. 자녀들의 사교육비에 대학등록금까지 허리가 휠 지경이다. 셋째는 주거불안이다. 치솟는 전월세 값으로 인한 렌트푸어와 내 집 마련을 위해 낸 은행 빚으로 인한 하우스푸어는 우리 시대의 큰 사회문제다. 넷째, 노후불안이다. 대부분은 여유가 없는 탓에 노후를 위한 개인적 준비는 거의 포기하고 있다. 다섯째는 의료불안인데,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이 부실한 탓에 값비싼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느라 이중으로 부담을 지고 있다.
사정이 이쯤 되면, 더 이상 이대로 살아가기는 어렵다. 우리는 그동안 경쟁만능의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서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책임져야한다는 정신으로 앞만 보고 살아왔다. 과거의 어느 순간엔 실패할 때도 있었지만, 그때는 부모와 형제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최근 들어 이것도 어려워졌다. 핵가족화와 가족관계의 해체 속에 가족복지 자원이 거의 소멸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믿을 것은 오직 나 자신밖에 없다. 경쟁만능의 신자유주의 시장경제에서 한 번 실패하면 재기하기도 어렵고, 실패의 골이 깊어지면 꼼짝없이 선별적 복지의 대상이 되고 만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경제적 처지는 그대로 자식들에게 대물림된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구성원 모두가 나부터 살겠다는 생존 욕망과 이기적 행위들이 넘쳐나고, 결국 시장만능의 사회로 더욱 퇴보하게 된다. 이에 따라 사회경제체제는 더욱 보수적이며 정태적이고 수동적일 수밖에 없게 된다. 이렇게 희망 없이 병들어가는 사회에서는 살고 견디기가 어렵다. 자살률과 우울증의 유병률이 매년 기록을 갱신하며 크게 늘어나는 이유다. 신자유주의 경제와 선별적 복지로 이루어진 대한민국의 양극화 체제를 이대로 두고서는 486세대는 물론이거니와 장차 더욱 심화된 ‘저출산-고령화’의 부담까지 떠안을 20대와 30대 후배들의 삶은 더욱 고단해질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을 바꾸고 싶다. 이러한 열망은 2010년 지방선거 때부터 분출됐고, 지난 2년 동안 대안적 국가모델로서의 ‘역동적 복지국가’가 우리의 시대정신으로 부상했다. 신자유주의 양극화와 민생불안의 고통을 가장 심각하게 겪고 있고, 80년대의 정치적 민주주의를 쟁취한 경험이 있는 40대가 앞장서서 청년실업과 불안한 미래로 인해 희망을 잃은 20대와 30대, 일자리가 불안한 50대의 베이비붐 세대, 그리고 노후불안의 어르신들과 연대해 경제와 복지가 함께 역동적으로 발전하는 선진복지국가의 새 시대를 열어야 한다. 이번 18대 대통령 선거는 이러한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의 달성을 위한 위대한 투쟁의 여정이 되도록 해야 한다.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ㆍ제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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