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현대미술의 아이콘' 곤잘레스 토레스 아시아 첫 회고전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현대미술의 아이콘' 곤잘레스 토레스 아시아 첫 회고전

입력
2012.06.28 11:41
0 0

동그란 벽시계 두 대가 나란히 걸렸다. 똑같은 시간에 맞춰져 똑같은 배터리로 움직이던 두 시계 사이엔 점점 시간의 격차가 생겨난다. 그리고 언젠가 둘 중 하나는 먼저 멈출 것이다. 동성애인 로스 레이콕이 먼저 세상을 떠난 것처럼. '완벽한 연인들'이라는 부제가 적힌 이 작품은 레이콕과 작가 자신의 사랑과 죽음을 은유한 작품이다. 그는 동성애로 죽임을 당한 그리스 신화의 '오르페우스'를 부제로 두 개의 직사각형 거울도 나란히 전시장 벽면에 붙였다.

1980~90년대, 보수적인 미국 사회의 예리한 검열의 눈초리를 빠져나갈 방법으로 그는 상징과 은유를 택했다. 서른아홉에 요절한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1957~1996)는 쿠바 출신 난민이자 유색인종, 동성애자, 에이즈 환자인 소수자 중 소수자였다. 사진작가로 출발한 그는 미국 주류 미술계의 허점을 파고들어 풍자하고 전복하며 자신의 예술적 정체성을 확보했다. 그리고 마침내 사후 11년이 지난 2007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미국관 대표 작가가 되는 등 현대미술의 아이콘이 되었다. 그의 아시아 최초 회고전'더블'(Double)이 서울 태평로 삼성미술관 플라토에서 9월 28일까지 열린다.

그의 작품세계의 키워드는 '경계'로 집약된다. 삶과 죽음의 경계, 영원과 소멸의 경계. 오리지널과 복제품의 경계, 자아와 타자의 경계. 에이즈로 시한부인생을 선고받고 8년간 작업에 몰두한 시간 내내 그 자신 역시 생사의 경계에 있었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대표작품 44점은 그가 추구한 경계의 예술을 잘 보여준다. 희뿌연 하늘을 나는 새의 사진 여러 장을 전시장 바닥에 쌓아놓은 '무제-환영'과 사탕시리즈는 소멸과 영원의 경계에 선 작품이다. 쌓아놓은 사진은 관객들이 한 장씩 가져갈 수 있는데, 줄어든 만큼 큐레이터는 다시 채워두는 식이다. 연두색 사탕으로 만든 길 '무제-로스모어Ⅱ'도, 은색 포장지의 사탕이 양탄자처럼 깔려있는 '무제-플라시보'도 관객이 먹는 만큼 사라지는 부분을 큐레이터가 메운다. '무제-로스모어Ⅱ'엔 에이즈로 죽어간 로스 레이콕의 몸무게인 34kg만큼 사탕을 놓아두었다. 입안에서 녹으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사탕처럼 덧없이 사라져가는 연인을 바라보는 그의 고통이 전해지는 듯하다. 에이즈로 죽어간 수많은 무명씨를 위한 진혼곡인 '무제-플라시보'는 500kg에 달한다. 이 작품은 뉴욕현대미술관(MoMA) 소장품으로 현재 그곳에서도 전시 중이다.

생전 자신의 얼굴이 노출되는 것을 꺼렸던 곤잘레스 토레스의 자화상은 벽 위의 텍스트로 남았다. 천장과 벽이 만나는 자리, 개인사와 당시 뉴스가 뒤얽혀 단어와 연도만 검은색의 글씨로 간결하게 적혀있다.

그의 작품에서는 '오리지널'의 개념이 없다. '변화만이 진정한 영속'이라 믿었던 곤잘레스 토레스는 생전에도 6개의 변형안(案)을 만들었는데, 사망 후에도 전시 기획자에 따라 재구성할 수 있게 했다. 작가의 간단한 지침에 따라 큐레이터의 변형을 허용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매번 새롭고 동시다발적인 전시가 가능한 이유다. 이번 전시에는 작가의 생전 마지막 변형안을 기반으로 다섯 개의 항목을 교체한 22번째 변형안이 선보인다.

새로 추가한 것 중에 눈에 띄는 항목은 '노란봉투, 1991.'그의 연인이 남긴 유서에 적힌 글귀 '100개의 노란 봉투에 자신의 유골을 보관해달라'에서 전시 기획자가 발췌한 것이다. (02)2014-6552

이인선기자 kell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