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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아물지 않은 유럽의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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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아물지 않은 유럽의 상처

입력
2012.06.28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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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반 독일 정서는 뿌리 깊다. 독일이 한창 산업화를 이루고, 이에 맞춰 주변국으로의 팽창을 꾀하던 19세기 중반부터 유럽은 독일을 무서워하고 멀리하기 시작했다. 특히 영국의 독일 혐오증은 다른 유럽 국가들보다 훨씬 심하다. 1870년 보불전쟁에서 프랑스가 프로이센에 참패하자 영국은 다음 타깃은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자국 내 독일인을 노골적으로 탄압했다. 독일인을 도박과 매춘, 강도 등을 일삼는 천박하고 호전적인 민족으로 매도했다. 언론까지 나서 독일에 대해 적대적인 여론을 부추겼다.

이런 정서는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더욱 깊어졌다. 조지 5세 영국 국왕은 독일이 1차 대전을 일으키자 자신의 독일계 작위를 모두 버리고 가명(家名)까지 영국식 이름인 윈저 왕가로 바꿨다. 군용견으로 유명한 독일산 셰퍼드마저 알세이션이라는 영국식 이름으로 바뀌어 불리는 수모를 당했다. 수십 년이 지난 1970년대 후반에 와서야 셰퍼드는 다시 자기 이름을 되찾을 수 있었다.

지금도 영국에서는 정치인이나 언론인 등 여론 주도층까지 독일을 악마화하는 호전적인 발언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특히 유럽인이 열광하는 축구 경기에서 독일과 맞붙을 때는 더욱 그렇다.

독일에 대한 반감은 유럽뿐만이 아니다. 1, 2차 대전 당시 미국에 있던 독일인은 당시 일본계 미국인이 당했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박해에 시달렸다. 수만 명이 아무 죄 없이 구속되고, 살던 집과 다니던 학교에서 쫓겨나고, 반란죄라는 누명을 뒤집어썼다. 독일인들은 출신을 숨기기 위해 이름까지 바꿔야 했다. 의회에서 미국 내 독일 지명을 전부 없애는 법안까지 발의될 정도였으니 당시 사회 분위기가 얼마나 험악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유로존 위기의 해법에 대해 독일과 여타 유럽 국가들이 충돌하면서 반 독일 정서가 심상찮게 거론되고 있다. 독일은 위기를 초래한 국가의 자구 노력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다른 유럽국들은 재정이 튼튼한 독일이 적극 나서서 위기를 진정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번 기회에 다시는 병이 재발하지 않도록 근본적으로 체질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과 우선 사람 살리는 일이 급하니 응급처치부터 해야 한다는 입장이 충돌하는 것이다.

독일과 생각이 다른 나라가 훨씬 많다 보니 '나치즘의 망령' '경제 제국주의 부활'같은 섬뜩한 반 독일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2차 대전 당시 나치에 점령당한 경험이 있는 그리스에서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나치 군복을 입고 있는 합성사진이 나돌고, 독일 국기를 불태우는 등의 호전적인 장면이 TV에서 여과없이 방영된다. 메르켈 총리를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지도자"라고 낙인찍는 영국 언론도 있다. 독일이 계속 긴축을 고집하면 나치즘의 등장을 초래한 30년대 불황과 비슷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도 잇따른다.

어느 쪽의 해법이 맞는지는 알 수 없다. 둘 다 소홀히 할 수 없는 과제일 것이다. 우려스러운 것은 이런 충돌이 해법을 도출하려는 건설적인 논쟁에서가 아니라 독일의 주도권을 놓고 벌이는 음습한 정치적 동기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이번 일을 유럽의 초강대국으로 도약하는 발판으로 삼으려는 독일과 무슨 일이 있어도 독일에 칼자루를 쥐어줘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유럽국가들의 헤게모니 싸움으로 보는 것을 비약으로만 볼 수 있을까. 마침 독일은 선출직 유럽대통령과 유럽공동의 군대를 보유하는 등 미국식 연방제와 같은 보다 강력한 정치공동체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다.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는 종전 후인 46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한 유명한 연설에서 "미래의 유럽전쟁을 막을 수 있는 본질적인 방법은 유럽통합"이라고 해 유럽공동체의 정치적 토대를 놓았다. 지금의 유로위기는 반세기도 훨씬 더 지난 유럽의 참화가 빚은 정신적 자상이 여전히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일 수 있다.

황유석 국제부 부장대우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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