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을 넘긴 프로야구가 혼란의 연속이다. 10구단 창단이 사실상 무산됐지만 논란은 오히려 가열되는 양상이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최근 임시이사회에서 선수 수급문제에 따른 리그의 질적 하락, 인프라 부족 등의 이유로 10구단 창단을 유보하자 반대 목소리가 거세다. 프로야구선수협회, 야구팬, 구단 유치를 추진하던 지방자치단체가 KBO에 즉각 항의한 데 이어 급기야 25일엔 선수협이 다음달 대전구장에서 열리는 올스타전 보이콧을 선언했다. 초강수다. 선수협은 KBO 이사회가 10구단 창단 절차를 밟지 않을 경우 내년 제3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불참도 불사하겠다는 강경 태세다.
10구단 창단 유보를 보는 시각은 반대가 압도적으로 많다. 스타 선수 출신인 박노준 우석대 레저스포츠학과 교수는 "홀수(9개) 구단으로 파행 운영이 불가피하고 게임의 연속성이 끊겨 경기 수준이 떨어질 것"이라며 "한국 야구 발전을 위해 10구단 창단은 필수"라고 했다. 소수의 목소리이지만 10구단은 시기상조라는 견해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구단 관계자는 "경제력과 인구를 감안했을 때 지금의 구단 수도 적지 않다"며 "한국야구가 눈이 높아진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려면 양적 확대 보다 야구장 건설 등의 인프라 개선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민승기자 msj@hk.co.kr
■ "홀수구단 체제, 리그 파행운영 불 보듯… 선수 수급·질저하 우려는 궁색한 변명"
지난 19일 KBO 이사회는 프로야구 10번째 팀 창단 승인 건을 부결시켰다. 지난해 3월, 1991년 쌍방울 레이더스 이후 21년 만에 9번째 회원가입 승인(NC소프트)을 해주고, 그 구단이 내년부터 1군 리그에 합류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역사에 남는 결단을 내렸던 이사회지만 이번엔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신생팀 창단을 무기한 유보시켰다. 이럴 거였으면 지난해 9번째 구단 창단도 승인하지 말았어야 했다. 9번째 구단을 허락했다는 것은 10번째 팀도 당연히 승인을 할 것이라는 것을 전제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종목은 팀을 증설하고 싶어도 하겠다는 기업이 없어 애를 태우는 상황이지만 프로야구에선 팀을 차리고 싶다는 곳이 두 군데나 있다. 이들은 각각 경기 수원과 전북을 연고로 KBO의 승인만 나면 창단계획을 밝힐 예정이었다. 두 손 들어 환영은 못할망정 납득할만한 근거를 대지도 못하면서 가로막는 구단들은 분명히 그 이유를 밝혀야 할 것이다.
각 구단 사장들은 현재 재임기간이 짧든 길든, 야구단 운영에 대한 방식이나 리그운영에 관해 전문가 수준이다. 리그가 짝수로 운영돼 쉬는 팀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시기상조'를 이유로 들어 팀 증설에 반대한 근거는 각 구단이 현재 적자이고, 고교야구팀의 수가 적어 선수수급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다. 또 프로야구의 질이 떨어져 공멸할 것이라는 주장도 했다.
선수수급 문제를 보자. 현재 53개 고교 야구팀에서 나오는 졸업생을 8명만 잡아도 매년 평균 424명의 선수들이 나온다. 대학 31개 팀에서 평균 5명이 나온다고 보면 155명이다. 매년 600명 가까운 선수가 공급된다는 것이다. 이 중 130~150명 정도의 선수가 9개의 구단에 입단한다고 보면 400여명은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들 중 쓸 만한 선수가 정말 없을까. 물론 10개 구단이 되어, 이전 8개 구단이 돌아가며 선발할 때보다 선수들의 수준이 떨어질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존 2군에 있는 선수들과 해마다 배출되는 선수를 감안하면 선수 수급에 있어 양과 질이 떨어진다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이번 KBO 이사회의 10구단 창단 유보 결정으로 내년 리그부터는 홀수 체제로 운영된다. 여러 가지 파행 운영이 불가피하게 됐다. 우선 팀당 16차전만 경기를 하게 돼, 한 시즌 총 128경기로 줄어든다. 기존 133경기에서 줄어드는 5경기로 인해, 입장객 수입과 마케팅 수입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고 전체적인 흥행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당장 라이벌 팀 간의 3경기가 줄어든다. 비로 인해 최대 4, 5일을 쉬게 되는 경기일정을 조정하려면 3연전, 2연전 등 다양한 일정을 짜야 한다. 과연 이러한 경기스케줄을 꿰고 야구장을 찾아 줄 팬이 어느 정도 될지도 고민해봐야 한다.
이런 식의 경기운영은 무엇보다도 게임의 연속성을 끊어 선수들의 경기력을 현저히 떨어뜨릴 것이다. 부실한 게임은 팬들이 외면하기 마련이다. 휴식을 취하는 한 팀은 적게는 2~3일, 비라도 오게 되면 4~5일까지도 쉬게 된다. 이렇게 되면 경기에 대한 감각을 유지하는 것도 관건이 될 것이다. 또 쉬었던 팀의 에이스들과 만나게 되는 팀의 피해도 생각 안 할 수가 없다. 대진표가 조금이라도 잘못 짜이게 되면 스케줄로 한해 농사를 망칠 수 있는 게 9구단, 홀수 구단 체제다.
김인식 KBO기술위원장은 당장 내년 시즌부터 9개 구단 체제에서의 불합리하고 불편한 리그운영을 겪어봐야 문제의 심각성을 알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고, 김성근 고양 원더스 감독은 비까지 겹치게 되면 5일 이상도 쉬게 될 텐데 이래서는 진정한 프로야구 시스템이 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빠른 시간 내에 이사회를 소집해 판단착오를 인정하고 10구단 창단을 승인하는 게 순리다. 한번 결정을 번복했다고 해서 자존심이나 권위가 추락하지 않는다. 잘못을 인정하고 그것을 고쳐 잡을 때 팬들은 그 용기에 박수를 보낼 것이다.
박노준 우석대 레저스포츠학과 교수
■ "양적 성장만 집착하다 역효과 가능성… 아마활성화·시설개선 등 내실 다질 때"
지난해 700만명 가까운 관중을 동원하며 국민 대표 스포츠로 자리잡은 한국프로야구의 탄생은 정상적이지 않았다. 1980년대 독재정권이 스포츠, 스크린, 섹스를 통해 정치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이 '3S'에 돌리기 위해 펼친 정책의 일환으로 시작됐기 때문이다. 프로야구산업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적정 국내총생산(GDP)와 인구가 담보돼야 하지만 이 같은 경제적 여건에 대한 고민은 물론, 리그의 적정 규모 등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그 과정이야 어떠했든 82년 출범한 프로야구는 30여년간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전성기를 달리고 있다.
불안한 출발이었지만 지금 누리고 있는 이 호시절이 앞으로 계속될 수 있을까.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무엇이든 잘 나갈 때 경계해야 하는 법이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이사회가 지난주 10구단 창단 결정을 유보한 것도 이 같은 인식을 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부족한 것들을 채워 체력을 키워야 할 때라는 것이다.
프로야구가 흥행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관중이 유지돼야 한다. 하지만 구단 수를 늘린다고 해서 관중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유럽에서 건너온 야구가 미국에서 꽃피울 수 있었던 것은 세계 최대의 경제력이 밑바탕이 됐기 때문이다. 이를 기반으로 리그가 확대됐고, 두터운 팬(인구)들이 이런 양적성장을 지탱했다. 12개 팀으로 운영되고 있는 이웃 일본도 마찬가지다. 한때 세계 제2의 경제력과 인구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흥행이다.
KBO 이사회가 10구단 창단 유보 결정을 내리면서 내놓은 이유 중의 하나가 시기상조였다. 이는 프로야구 1개 팀당 인구 수를 비교하면 설명이 가능하다. 미국(전체 30개팀)이 1,032만명, 일본(12팀)은 1,056만명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그 절반 수준인 550만명에 그친다. 경제력과 인구 등의 여건을 감안했을 때 지금의 구단 수도 비정상적인 만큼 구단 수를 늘리는 데에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추가 구단 창단을 위해서는 고교, 대학, 사회인야구 등 아마추어 야구팀 활성화와 같은 저변 확대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우리의 선수 인프라 상황을 보더라도 10구단 창단은 이른 감이 있다. 프로 1개 팀당 한국의 고교야구팀은 5.8팀이다. 1만5,000여팀의 고교야구팀을 갖춰 프로 1팀당 고교 500개팀의 미국, 340여팀의 일본과 비교하면 우리 선수 공급인프라는 매우 열악하다. 여기서 구단이 늘면 선수들의 경기력 하락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경기 수준이 낮아지면 팬들은 야구장을 외면하기 마련이다. 지금도 현장에선 백업선수가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경기력 하락을 부를 10구단 창단은 늦추는 게 맞다.
10구단 창단은 서둘러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홀수(7개) 구단의 상황에서 짝수구단을 위해 91년 창단한 쌍방울 레이더스의 흥망이 좋은 예다. 당시 프로야구 발전 근거로 8구단(쌍방울)이 창단됐지만 자금난을 겪던 쌍방울이 구단 운영비를 충당하기 위해 선수를 현금 트레이드 대상으로 삼으면서 프로야구 전체의 물을 흐렸고, 팬과 연고지 전부에 상처를 남겼다. 또 현대 유니콘스는 모기업 지원이 끊기자 야구발전기금을 구단 운영자금으로 끌어다 탕진했다. 전성기를 달리고 있는 한국 야구 퇴행을 막기 위해서라도 질적 성장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
야구 팬들의 눈높이가 높아지고 있는 현실도 한국야구의 질적 성장이 우선되어야 하는 이유다. 팬들은 한국야구가 2006년 WBC 4강,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2010년 WBC 준우승을 차지하는 광경을 또렷이 기억한다. 메이저리그와 일본프로야구를 접하며 눈 높이도 상당해졌다. 하지만 빈약한 현재의 인프라로 팬들의 눈높이에 부응할 수 있을까. 2만5,0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구장은 잠실과 사직, 문학구장 뿐이고 광주, 대구, 대전구장은 프로 경기를 할 수 있는 경기장이 아니다. 원정 경기라도 할라치면 원정팀 락커룸이 없어 복도에서 유니폼을 갈아 입는 게 현실이다. 지금은 아마추어 야구를 활성화하고 야구장 시설 개선 등 내실을 다지는 것이 한국 야구의 발전을 위하는 일이다.
프로야구 구단 관계자
*이 글은 프로야구 한 구단 관계자가 보내왔습니다만 구단 측의 요구로 작성자 실명과 직함을 싣지 못함을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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