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인 법원행정처장이 국회를 방문,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에 대법관 임명동의안의 제 때 처리를 호소하는 기막힌 일이 벌어졌다. 앞서 대법원은 "대법관 공백사태가 발생한다면 대법원의 재판기능이 마비된다"며 국회에 동의안 처리를 간곡하게 요청했다. 법원이 정치권 접촉의 금기를 깨면서까지 나서고 있는 것은 그만큼 사정이 다급한 때문이다. 이뿐 아니다. 대한변협은 "국회개원 지연으로 인해 실제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며 여야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세비반환청구소송을 내겠다고 밝혔다. 다소 무리한 법 논리로 인해 율사 출신 의원들의 냉소를 받고 있지만 다수 국민의 심정에는 도리어 부합한다.
늦어도 이번 주 내에 인사청문특위를 구성하기 위한 국회의장단 선출이 이뤄지지 않으면 내달 10일 대법관 4인 퇴임으로 인한 대법원 재판공백은 물리적으로 피할 수 없게 된다. 당장 대법원 사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소부(小部)재판부 구성에 구멍이 뚫리면서 그렇지 않아도 과중한 대법원 사건 부담이 더욱 가중된다. 단순 산법으로도 하루 50건이 넘는 사건들의 처리가 지연됨으로써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신속하게 재판 받을 권리가 심각하게 침해 받게 된다. 실제로 지난해에도 대법관 3인의 임명동의안 처리가 42일이나 늦어지면서 재판처리율이 10%이상 떨어졌다. 물론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떠안았다.
지난해 대법관 임명동의안 처리도 한ㆍ미 FTA 처리와 연계된 정파간 싸움에 뜬금없이 연계돼 지연됐거니와, 이번에도 무관한 언론사파업 청문회와 민간인사찰 국정조사 문제에 사법부가 볼모로 잡혀있다. 오로지 대선에서의 유ㆍ불리만 염두에 둔 정파간 힘겨루기로 엄중한 사법권을 훼손하고 국민의 헌법적 권리마저 도외시하는 정치권의 방자한 행태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크게 보아서는 도무지 타협할 줄 모르는 여야 모두의 책임이나, 굳이 집어 말하자면 이번 사안에 관한 한 민주통합당 쪽의 명분이 훨씬 치졸하다. 사안의 경중이나 본질도 판별 못한 채 그저 국가적으로 중요한 일일수록 더 효과적인 무기로나 인식하는 버릇은 이제 그만 버릴 때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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