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북, 매카시즘, 박정희, 유신, 전두환, 김현희….' 요즘 뉴스의 중심에 있는 단어들을 보면 지금 우리가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지 당최 헷갈린다. 박정희 시절 같기도 하고, 전두환 집권시기인 것도 같다. 수십 년은 퇴행한 이슈에 갇혀있는 형국이다. 미래도 없고 비전도 없는 암울함이 대한민국을 짓누르고 있다.
퇴행의 첫 걸음은 종북 논쟁이다. 당초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경선 부정의혹에서 시작된 이슈가 어느 날 이름도 낯선 '동부연합'으로 바뀌더니 느닷없이 주사파와 종북주의로 변질됐다. 이석기, 김재연 둘이서 나라를 말아먹을 것처럼 들끓었다. 세간의 농처럼 '이석기'가 한국을 '석기시대'로 돌려놓았다. 한 줌도 안 되는 주사파에 자유민주체제 전복을 우려할 만큼 우리 사회가 허약하다는 걸 자인한 꼴이다. 여기에 박근혜 새누리당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국가관을 의심받는 사람들은 국회의원이 돼서는 안 된다"며 기름을 끼얹었다. 경제통이라던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극우 언론인 조갑제의 신간을 들고 나와 "(야당에) 종북주의자나 간첩 출신 국회의원이 있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빨갱이를 때려잡자는 매카시즘 망령을 되살리려는 냄새가 짙게 배어난다.
퇴행과 구태를 좇는 정치풍토는 관 속에 들어갔던 강시들의 부활을 재촉했다. 국가반란의 수괴인 전두환 전 대통령은 육사에 가서 생도들에게 사열을 받는가 하면 하나회 출신 예비역장성이 사장인 골프장에서 VIP 대접을 받으며 골프까지 쳤다. 대구공고는 모교 출신을 기린다며 '전두환 대통령 자료실'을 만들어 여기에 흉상을 세우고 군복과 지휘도를 전시해놨다. 전 전 대통령을 "정치생활의 멘토"라고 우러르던 하나회 멤버 강창희 새누리당 의원은 국회의장 후보에 내정됐고, 5공 출신 김용환 전 의원 등은 7인회를 결성해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다.
잇단 공세에 재미가 붙은 보수세력은 대한항공 858기 폭파범 김현희까지 무대에 올렸다. 노무현 정부가 자신을 가짜로 몰려고 했다는 새롭지도 않은 발언을 보수언론이 대서특필하고 새누리당이 맞장구 쳤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5년과 2007년 국가정보원 과거사진실규명위원회 등이 잇따라 조사를 벌인 뒤 조작설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 일단락된 사안이다. 그런데도 당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의혹을 제기한 배경이 수상하다며 정부가 조사를 하고 김현희에게 용서를 빌라며 생떼를 부린다. 국기를 흔들 만한 엄청난 사건에 대해 일말의 의혹제기조차 하지 말라니 독재시대가 따로 없다.
보수세력의 종북몰이 시리즈가 의도하는 바가 뭔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대선을 앞두고 진보세력을 흠집 내고 야권 연대를 저지하자는 속셈이다. 그래서 대선까지 틈만 나면 보수세력의 종북 공세가 이어지리라는 건 보나마나다. 그 와중에 죽어나는 건 국민이고 대한민국이다. 이웃 중국은 유인 우주선 도킹과 해저 7,000m 탐사에 성공해 과학기술발전의 쾌거를 자축하느라 떠들썩하다. 일본은 핵무장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등 군사대국화를 향해 거침없이 줄달음질치고 있다. 유럽 재정위기로 세계경제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시계 제로의 위기상태다. 그런데도 우리는 과거로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 이런 퇴행적 정치풍토가 어떤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지는 뻔히 예견된다. 빈곤, 불평등, 실업 등 경제적 후퇴와 반목, 갈등, 대립 등 사회적 손실이 기다릴 뿐이다. 미국의 정신의학자 제임스 길리건은 저서 에서 미국에서 보수당이 집권하면 살인, 자살이 늘어나고 민주당이 집권하면 줄어들었다는 실증적인 통계 조사결과를 내놓았다. 보수정당의 정책이 불평등과 폭력을 키우는 정책을 추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 집권보수세력도 지금의 퇴행적 행태가 국민들의 폭력성과 분노를 부추기고 있는 건 아닌지 깊이 생각해보기 바란다. 지금 대한민국을 어디로 끌고 가고 있는지도 함께 말이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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