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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의 길 위의 이야기] 살자고 사는 게 집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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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의 길 위의 이야기] 살자고 사는 게 집이거늘

입력
2012.06.26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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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7년 전, 어쩌다 오피스텔을 하나 사게 됐다. 물론 빚을 왕창 지고서다. 집 앞으로 지하철이 뚫릴 거라는 귓속말도 달콤했지만 어쨌든 지상에 내 집 한 칸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 도장 푹 찍고 보니 웬걸, 매달 갚아 나갈 원금에 이자가 뒷목을 싸잡게 만들더란 말이다.

그래도 내심 집값만 올라 봐라 실낱 같은 기대감으로 다달이 목돈을 부어나갔거늘 들려오는 소식이 폭삭 집값 내려앉는 소리에 지하철 개발 전면 백지화라니, 한 나라의 정책이란 것이 이렇게도 주먹구구식일 수 있단 말일까. 작년에 경매로 넘어갈 전셋집을 울며 겨자 먹기로 사들인 후배는 적금 하나 들어놓은 셈 치겠다고 하더니 1억 가까이 떨어진 집값에 망연자실한 눈치였다.

이 빚 때문에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다니까. 소화 잘 되는 얘기로만 밥상을 채워도 방귀가 나올까 말까인데 점심 테이블을 그득 채우는 건 한숨뿐이라서 일찌감치 수저 내려놓고 아이스커피나 쭉쭉 빨며 사무실로 들어오는데 이 땡볕 아래 땀을 뻘뻘 흘리며 전단지를 나눠주는 남자 둘을 봤다.

겨드랑이에서 등까지 땀으로 흠뻑 젖어 있던 남자들은 반소매 셔츠에 넥타이까지 매고 있었다. 파주에 새로 분양되는 아파트에 입주하시라고? 후배는 보란 듯이 전단지를 구겼고 나는 재활용하라는 의미에서 그들에게 다시 그걸 내밀었다. 저들도 사느라고 애쓴다, 그치? 땀에 젖은 셔츠만 아니었어도 쌍욕 해버렸을 난데.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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