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포르투갈 제2의 도시 포르투 중심가. 수백 년 된 건물들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의 자태를 뽐내고 있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상당수가 텅 비어 있어 을씨년스러운 모습이었다. '매매' '임대' 간판을 내 건 낡은 집들도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이날 저녁 포르투 외곽의 한 비즈니스호텔 식당. 독일, 프랑스 등 '부자 나라'에서 온 100여명의 노인 관광객들이 가득했다. 포르투갈 전통 가무단의 공연을 감상하며 식사를 하던 독일인 프란츠 뮐러(74)씨는 '포르투갈의 미래를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우리 방식대로, 저들은 저들 방식대로 살 뿐"이라고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포르투갈은 요즘 유럽에서 잊혀진 나라나 마찬가지다. 작년 4월 한 차례 구제금융에도 불구하고 10년만기 국채금리가 10%를 넘나든다. 국가부도의 마지노선인 '7% 기준'조차 무색해진 셈이다. 회생이 여의치 않은 상황이지만 워낙 경제 규모가 작은 탓인지 국제 금융시장에서 포르투갈 경제지표는 더 이상 뉴스가 되지 않는 분위기다.
하지만 현지인들이 전하는 긴축정책의 충격은 심각했다. 매년 두 차례 지급되던 공무원들의 바캉스ㆍ크리스마스 보너스는 지난해부터 폐지됐고, 누구에게나 전액 무료이던 의료비는 이제 소득수준 별로 차등 책정되고 아동 수당 역시 대폭 줄었다.
반면 지출 부담은 치솟고 있다. 6%이던 식료품 부가가치세는 물론, 전체 부가세 수준이 21%에서 23%로 오른 데 이어 조만간 25%로 뛸 것이라는 전망이 파다하다. 0.85유로였던 경유값은 1년 만에 1.5유로를 넘나들어 국경 지방에선 아예 스페인으로 건너가 기름을 넣고 올 정도다.
대형마트에는 우리의 '1,000원 숍'과 비슷한 노란 색깔 '이코노믹 존'이 인기다. 상처가 났거나 질 낮은 식료품을 싸게 파는 곳이다. 현금수입이 다급해 진 마트들은 '100유로 이상 사면 50%를 깎아준다'며 울며 겨자 먹기식 깜짝 세일을 자주 벌인다. 평균 30~35% 폭락한 집값 때문에 예전에는 대출을 퍼주던 은행들이 요즘은 보증인도 모자라 보험가입 같은 '꺾기'까지 요구하고 있다는 게 현지인의 설명이다.
포르투갈의 몰락에는 2008년 금융위기의 충격보다 이전부터 누적된 구조적인 약점이 더 크게 작용했다. 1986년 유럽연합(EU) 가입 이후 유럽 각국의 투자가 몰리면서 한 때 '유럽의 공장'으로 불릴 만큼 제조업 공장이 번성하고 실업률도 낮았지만, 당시 노동생산성을 높이고 자체 경쟁력 산업을 키우지 못한 게 화근이었다.
2002년 유로화가 도입되고, 2004년 동유럽 국가들이 대거 EU에 가입하면서 외국인 자본이 임금이 더 싼 동유럽으로 빠져나가자 포르투갈은 순식간에 소규모 농업과 관광 말고는 내세울 게 없는 나라가 됐다. 여기에 각종 규제와 부패문화 등 오랜 독재 기간 동안 굳어진 관행이 경제 회생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고 있다.
리스본 공항에서 만난 주아우 고메즈씨는 "마땅한 내수산업이 없다 보니 쓸만한 인재들은 자꾸 해외로 빠져나가고 안으로는 빈부격차만 커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며 "근본적인 해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리스본ㆍ포르투=글ㆍ사진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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