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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사는 게 뭔데?"

입력
2012.06.25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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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장! 사는 게 뭔데?"

대기업에서 해외 마케팅을 담당하는 이모(39) 과장. 얼마 전 회사 노조위원장으로부터 호된 면박을 당했다. 그는 유럽 출장 중 천신만고 끝에 수 천만 달러짜리 수출 계약을 성사시켰다. 하지만 납기가 너무 촉박했다. 납기를 맞추려면 공장 근로자들이 몇 달간 주중 야간 작업과 주말 특근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다급한 나머지 직접 노조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어렵게 딴 계약이니 꼭 납기를 맞춰야 한다"며 협조를 구했다가 오히려 호통을 들어야 했다. "제가 과욕을 부린 건데 누굴 탓하겠어요. 세상이 변했잖습니까."

이 과장의 스토리는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맞은 우리가 어디로, 무엇을 향해 가야 할 지를 새삼 생각케 한다. 최근 대선 출사표를 던진 문재인ㆍ손학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출마 선언문을 정독하게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두 후보 모두 보편적 복지를 강조하는 민주당 후보들답게 출마 선언문에는 약자에 대한 배려, 삶의 질 향상, 복지에 대한 강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아쉬움도 적지 않았다. 성장과 복지를 함께 말하며 새 시대를 열어가겠다는 의지는 충만해 보였지만,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30년 후를 내다보는 비전이 모호해 큰 감동을 주지는 못했다. 키워드를 중심으로 몇 가지만 보자.

먼저 '성장' 부문에서 문 고문은 분배ㆍ재분배를 통한 '포용적 성장'을, 손 고문은 성장의 과실이 고루 돌아가는 '진보적 성장'을 제시했다. 한마디로 분배를 통한 성장론이다. 그러나 성장ㆍ분배 문제를 경제정책적 차원에서만 접근하면 한국적 현실에선 결국 성장을 우선시하는 '성장주의 프레임'에 갇히게 된다는 게 기자의 생각이다.

소규모 개방경제인 한국은 글로벌 위기가 닥칠 때마다, 또 불황이 찾아올 때마다 "경제가 어려운데 우선 돈을 벌어야 분배든 복지든 할 것 아니냐"는 논리에 맞닥뜨리게 된다. 참여정부 시절 강조했던'분배와 성장의 선순환 관계'가 어떻게 귀결됐는지를 보면 분명해진다. 몇 달만 무역적자가 나도, 경제성장률이 3% 아래로 떨어져도 난리가 나는 형국이다. 때문에 좁은 의미의 성장ㆍ분배 프레임을 넘어, 국민 삶의 질 향상을 목표로, 경제의 중장기적 성장 기반을 확충해 가는 선진복지국가를 국가발전의 새 패러다임으로 제시해야 한다. 더구나 지금은 안팎으로 세기적 전환의 시대 아닌가. 특히 국내적으로는 2017년부터 생산가능인구 감소와 함께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14%에 달하는 고령사회에 진입하게 된다. 인구정책을 비롯해 노동, 교육, 경제ㆍ산업, 조세ㆍ재정 등을 포괄해 국가발전의 새 틀을 다시 짜야 할 시점이다. 다시 말해 복지국가라는 큰 틀에서 분배와 성장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두 사람은 '강한 보편적 복지국가'(문재인), '완전고용국가'(손학규)를 이야기하고 있다. 문제는 그런 국가가 어떻게 가능한지, 우리가 지향해야 할 구체적 모델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는 점이다. 미래 한국이 복지후진국으로 간주되는 '작은 미국'(자유주의적 복지국가)이 돼야 한다는 말은 아닐 테니, 그렇다면'큰 스웨덴'(사회민주적 복지국가)으로 가자는 걸까. 아니면 미국과 스웨덴의 중간쯤인 독일식(사회보험 중심의 복지국가)을 생각하는 걸까. 이도저도 아니면 세계 최고의 한국형 복지국가를 만들자는 걸까.

어떤 경우라도 이제 선진복지국가 건설은 피할 수 없는 과제다.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많은 나라, 하루 종일 일해도 월급 200만원이 안 되는 근로자가 전체 봉급 생활자의 절반이 넘는 나라지만 저녁과 주말을 가족과 함께 오손도손 인간답게 보내고 싶다는 열망은 넘쳐나고 있다. 대선 출사표를 던진 인사라면, 또 조만간 출사표를 던질 인사라면 보여줘야 한다. "사는 게 뭔데"라는 질문이 내포한 국민적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구체적 비전과 손에 잡히는 정책 말이다.

박진용 산업부 차장 hu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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