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가을로 돌아간 것 같다."
24일 국내 중소철강업계 관계자는 업계의 현황을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로 연쇄 도산사태를 맞았던 4년 전에 비유했다. 그 만큼 상황이 절박하고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국내 철강업계가 전례 없는 불황을 맞고 있는 가운데 중소 철강사들이 생존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현재 철강업계는 유럽 재정위기와 중국 성장세 둔화에 따른 수요 부진, 중국 업체들의 저가 물량공세 등으로 최악의 상황. 이에 대기업들은 비상경영을 펼치며 중국 업체들과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지만, 물량이나 기술 면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중소업체들은 줄도산의 위기를 맞고 있다.
최근 부도를 맞은 미주제강과 함양제강이 대표적이다. 지난 4일 최종 부도 처리된 함양제강은 조선, 기계 등의 업체에 철강 가공제품을 공급해 왔는데, 3년 연속 영업손실을 기록하면서 자금 압박을 받았다.
자산이 1,500억원 규모인 미주제강도 비슷한 이유로 법원에 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했다. 업계 관계자는 "중소업체의 주력 상품인 철강 가공제품은 부가가치 창출 폭이 작기 때문에 경기 변동에 따라 수익성이 급격히 휘둘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업계의 실적부진도 전례가 없을 정도. 올해 1분기 철강업계의 실적을 보면 영업이익이 흑자를 기록한 업체는 11개사에 불과했다. 업계 1위 포스코의 영업이익률(4.46%)도 전년 동기(10.11%)와 비교해 반토막이 났다. 빅3 중 하나인 동국제강은 아예 적자(-2.75%)로 돌아섰다. 더욱이 2분기 상황도 전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주요 업체들의 사정이 이러하니 대부분의 중소 철강사들은 손실을 보며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최근 철강업계의 불황에 대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원료-생산-수요'로 이어지는 구조의 균형이 깨진 점을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한다. 철광석 등 원자재 가격은 올랐지만, 유럽 재정위기 여파로 수요는 줄어들었다. 반면 제품 공급 경쟁은 한층 가열됐다. 포스코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세계 철강 소비증가율은 지난해(7.7%)보다 둔화된 6.5%에 그칠 것으로 예측됐다.
문제는 중소업체들은 위기를 타개할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점. 고부가가치 위주로 제품 생산을 다변화한 포스코나 포항 제1후판 공장 가동을 중단해 수요조절에 나선 동국제강 등 대형 업체들과는 달리, 중소 업체들로서는 전적으로 조선이나 건설 등의 경기 회복 여부에 목을 매야 하는 처지다. 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국내 철강사의 경우 외국과 비교할 때 건설부문 납품 비중이 40~45%에 달할 정도로 매출 편중 현상이 심한 편"이라며 "경기에 민감한 건설업종의 하락세는 곧 철강업계의 불황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중소업체들은 중국산 저가 철강의 공세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정은미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중소 철강업체들이 중국 저가제품에 비해 기술과 품질 면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다"며 "여기에 신기술로 무장한 철강 대체제까지 다수 등장하면서 시장 지배력을 상실할 위기에 처해 구조조정에 내몰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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