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계양구의 금은방 주인 A씨는 며칠 전 경찰로부터 "도난 물품이 없냐"는 뜻밖의 연락을 받았다. "우리 가게엔 전혀 그런 일 없다"고 말한 A씨는 경찰이 "우리가 잡은 피의자가 거기서 물건을 훔쳤다고 한다"며 재차 확인하자, 혹시나 하는 생각에 금고문을 열었다. 얼마 전 주문 받은 팔찌의 포장을 뜯는 순간 A씨는 눈 앞이 캄캄해졌다. 그제서야 그는 이달 초 "옆 치과병원에 새로 온 원장"이라며 팔찌를 주문한 중년 신사가 떠올랐다.
중년 신사로 가장한 사람은 실은 전과 13범의 전문 절도범 고모(58)씨였다. 고씨의 수법은 피해자가 도난 사실을 까맣게 모를 정도로 치밀하게 대담했다.
이달 초 A씨 가게를 찾은 고씨는 순금팔찌를 사는 척 하다가 주인이 한 눈을 파는 사이 몰래 주머니에 넣은 뒤 주인에게 빈 팔찌 상자를 포장해 달라고 요구했다. 상자 속 내용물이 사라진 것을 모른 주인이 포장을 끝내자, 고씨는"현금을 찾아 올 테니 보관해 달라"고 말한 뒤 유유히 사라졌다. 고씨는 이 같은 방식으로 서울, 경기, 인천, 대전, 광주 등 전국의 금은방과 편의점을 돌며 범행을 벌였다. 빈 상자만 보관하고 있던 10여명의 피해자들은 고씨가 추가범죄 사실을 자백하기 전까지 도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서울 관악경찰서는 전국의 금은방 및 편의점, 구두 판매점 등 16군데에서 동네 병원장, 은행 지점장 등을 사칭하며 2,234만원 상당의 금품을 훔친 혐의로 고씨를 구속했다고 24일 밝혔다. 경찰 조사결과 고씨는 지난 3월 5일 출소한 지 20여일만에 범행을 시작, 6월19일 검거 직전까지 일주일에 한번 꼴로 범행을 저질러 온 것으로 드러났다.
수감 이후 여죄가 밝혀지면 형량이 늘 수도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던 고씨는 경찰이 추궁하기도 전에 10여 군데에서 추가 범죄를 저질렀다고 자백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고씨가 가게를 찾아 '옆 은행에서 왔다'고 하면 피해자 대부분이 '새로 오신 지점장이냐'고 반길 정도로 고씨의 언변과 차림새가 좋아 쉽게 넘어 간 것 같다"고 말했다.
조원일기자 callme1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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