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만에 문을 닫았다 열었다, 정책이 무슨 애들 장난도 아니고. 대형마트 쉬는 날 장사 좀 해 보겠다고 쉬는 날까지 바꿨는데 다 헛수고가 됐습니다."
24일 오후 서울 강동구 천호신시장에서 만난 곡물상회 주인 정경인(60)씨는 썰렁한 시장통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천호신시장은 매달 2ㆍ4주 일요일에 문을 닫았다. 40년 동안 그렇게 해 왔다. 하지만 지난 4월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의 의무휴무일이 매월 2ㆍ4주로 정해지자 상인들은 긴 논의 끝에 휴무일을 1ㆍ3주로 바꿨다. 대형마트가 쉬는 날 문을 열어야 그나마 손님들이 좀 찾아올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날은 휴무일을 바꾸고 넷째 일요일에 문을 연 첫날이었다.
하지만 지난 22일 서울행정법원은 대형마트ㆍSSM의 영업시간을 제한한 강동ㆍ송파구 조례에 위법판결을 내렸고, 구내 대형마트 6곳과 SSM 41곳은 24일 일제히 문을 열었다. 공교롭게도 대형마트를 피해 문을 연 첫날, 대형마트들도 함께 문을 열었으니 상인들은 화가 나다 못해 차라리 허탈한 표정들이었다. 정씨는 "(손님들이 마트로 가는 바람에) 오전 내내 개시도 못했다"고 했다.
인근 암사종합시장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시장 측은 2ㆍ4주 일요일을 '전통시장 가는 날'로 정해 다양한 행사를 마련했고, 나름 성과도 봤다. 하지만 관내 대형마트와 SSM이 다시 문을 연 이날, 시장을 찾은 손님은 2주 전에 비해 절반으로 줄었다.
상인들은 판결이 나오자마자 다시 일요일 영업을 재개한 대형마트 측 행태도 서운하지만, 구청의 안일한 행태에 더 화가 나는 듯했다. 천호신시장 상인 김모씨는 "구청과 구의회는 대체 뭐 하는 곳이냐. 법원이 의무휴무 자체보다 휴무일 지정절차를 문제 삼았다고 하던데 구청직원이랑 구의원들이 어떻게 절차도 못 지킨다는 말이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상인은 "처음부터 의견수렴 같은 것 제대로 했으면 됐을 텐데 구청이 어설프게 일하는 바람에 상인들만 피해를 보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시와 구청 측은 항소입장과 함께, 절차를 다시 거치면 의무휴무일 시행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 하지만 재판이 진행되고 재지정절차를 밟으려면 몇 달이 걸릴 것이고, 그 사이 대형마트와 SSM은 계속 영업을 할 것이므로 전통시장은 또다시 '파리 날리는 일요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그러는 사이 '상생'분위기 자체가 소멸될지도 모른다는 게 상인들의 우려다.
전국시장상인연합회 진병호 회장은 "마트와 시장이 대결구도 아닌 한발 양보로 함께 사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어떤 경우든 유통법의 본래 취지는 훼손되어선 안된다"고 말했다.
한편 문을 연 강동ㆍ송파구내 대형마트의 매출은 대부분 정상을 회복했다.
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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