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정치단체 무슬림형제단의 지원을 업은 무함마드 무르시(61) 후보가 친군부 성향의 아흐메드 샤피크(71) 후보를 제치고 이집트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무르시는 1952년 이집트의 정체(政體)가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바뀐 뒤 첫번째 직선 투표로 당선된 대통령이다. 하지만 이집트 과도정부의 실권을 장악한 군부가 이 같은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민정 이양을 연기할 가능성도 있어, 이집트의 정국 불안이 지속될 전망이다.
파루크 술탄 이집트 선거관리위원회장은 24일 결선 투표 최종 집계 결과 무르시 후보가 1,328만 131표(51.93%)를 득표해 1,234만 7,380표(48.17%)를 얻은 샤피크 후보를 앞섰다고 밝혔다. 최종 투표율은 51%로 집계됐다. 애초 이집트 대선 결과는 21일 발표될 예정이었으나 부정선거 의혹 조사를 이유로 연기됐다가 이날 뒤늦게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이집트 민주화의 성지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서 선거 결과 발표를 초조하게 기다리던 무슬림형제단 지지자 수만명은 결과 발표 직후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며 무르시의 사진과 이집트 국기를 흔들었다.
정치범 출신의 무르시가 신임 이집트 대통령으로 당선됨에 따라, 이집트는 그간의 정교분리 전통을 깨고 급속히 이슬람주의 국가로 변화할 전망이다. 호스니 무바라크(84) 등 이집트 역대 최고 권력자들은 이슬람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이슬람주의를 표방하는 정치집단의 제도권 진입을 강력하게 규제해 왔다.
무슬림형제단 대통령의 집권은 이집트 현대 정치사에서 이뤄진 사실상 첫번째 수평적 정권교체로 평가된다. 결국 정치ㆍ경제ㆍ외교ㆍ국방 등 모든 분야에서 일대 변혁이 이뤄질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무르시 정권이 제대로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현재 과도정부를 장악한 거대한 산, 군부의 영향력을 극복해야 한다. 이집트 세속주의 정치 세력을 대표하는 군부의 입장에서 이슬람주의가 정권을 장악하면 권한 축소를 감수해야 하기에,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을 수 있다. 군부는 애초 7월 1일을 기해 민간 정부에 정권을 이양한다고 약속했지만, 최근 신임 대통령의 권한을 제한하는 임시헌법을 공포하는 등 무르시 당선시 순순히 권력을 내놓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이와 함께 인구 8,100만명의 최대 중동 국가 이집트에서 이슬람주의 정권이 들어선 것은 지역 안보에 상당한 위협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우선 이집트가 1979년 안와르 사다트 정권 시절 이스라엘과 맺은 중동평화협상이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무슬림형제단은 중동평화협상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인데, 이 경우 미국 및 이스라엘과의 급속한 관계 악화를 감수해야 한다.
무르시가 평소 이슬람 율법에 기반한 통치를 강조해 온 점으로 볼 때, 이집트 사회가 과거 이란의 팔레비 왕조 붕괴 이후와 같이 급속히 보수화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무르시는 대선 유세에서 “샤리아(이슬람 율법)가 우리의 헌법”이라고 발언한 바 있으며, 여성과 이교도(비 무슬림)의 대선 출마 금지를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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