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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의학한류/ <하> 세계를 가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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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의학한류/ <하> 세계를 가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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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2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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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념을 깬 치료법 개발… 한국 의료기술이 '교과서'가 되다

순천향대 서울병원 소화기병센터 조주영 교수는 일본 의사들의 질투를 한 몸에 받는다. 일본 의료기기 회사들이 주로 만드는 첨단 내시경을 세계에서 가장 잘 쓰는 의사로 7년째 꼽히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의사들 입장에서는 자존심이 상할 만하다. 조 교수는 "외국 학회에서 일본 의사들을 만나면 내 앞에선 축하한다, 고맙다 하지만, 자기들끼리 모였을 땐 우리 팀을 어떻게든 이기고 싶어한다는 얘기가 들린다"며 웃었다.

일본뿐 아니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한국의 의학 수준을 높이 사고 있다. 여전히 의학 최강국인 미국 의사들이 심지어 우리 의사들에게 배우기까지 한다. 역사도 경제력도 실력 앞에선 밀린다.

미국 의사들 한국 DVD로 공부

조 교수팀이 7번째로 미국 소화기병주간학술대회에서 시청각교육상을 받은 건 바로 지난달이다. 조 교수에 따르면 전 세계 의사 2만~3만명이 참가하는 소화기 분야 최대 규모인 이 학회에서 7년 연속으로 시청각교육상을 받은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일본은 단 2번 받았다. 이 상은 각국의 의사들이 직접 소화기 내시경 노하우를 담아 출품한 교육용 DVD 중에서 의학적으로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 받은 작품에게 주어진다. 해마다 경쟁률이 족히 10대 1은 된다.

1위를 차지한 조 교수팀의 DVD에는 첨단의술인 현미경내시경 기법이 담겨 있다. 소화기 내부를 약 1,000배나 확대해 볼 수 있는 내시경이다. 기존 내시경만으로는 암인지 아닌지 모호해 보이는 조직도 현미경내시경으론 확실히 가려낼 수 있다. 조 교수는 "5~7일씩 걸리는 조직검사를 기다릴 필요 없이 실시간으로 결과를 알 수 있고, 정확도는 96%에 이른다"고 말했다.

2위 역시 조 교수팀의 대장암 내시경 DVD에 돌아갔다. 미국이나 유럽에선 의사들이 대부분 내시경에 레이저를 달아 넣고 암 덩어리를 태워버리는 방식으로 대장암을 치료한다. 그러나 조 교수팀은 내시경에 달린 미세한 칼로 암 덩어리를 그림 그리듯 정확히 도려내는 장면을 이번 DVD를 통해 멋지게 보여줬다. 태우는 게 내시경 암 치료의 기본이라면 도려내는 건 한층 업그레이드된 방식인 셈이다.

수상작 DVD는 편당 100~150달러에 팔린다. 여러 나라 소화기 의사들이 한국 의료진이 만든 DVD를 사서 보며 공부한다는 얘기다. 조 교수는 "특히 학회 소속 미국 의사들은 수상작을 보고 보고서를 제출하면 병원에서 인사고과에 반영되는 평점으로 인정 받는다"고 설명했다.

"따라가다 이젠 탑 클래스"

외국 학회에 자주 다니는 우리나라 의사들은 외국 의사들이 한국의 의학 발전 속도가 상당히 빠르다고 이야기하는 걸 많이 듣는다. 박동일 강북삼성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국내 의사들이 다른 나라에 비해 많은 환자를 보고, 새로운 개념이나 기술, 기기 등을 그때그때 빨리 받아들여 임상에 적용해온 덕분"이라고 말했다. 기존 치료법을 고수하려는 경향이 강하며 보수적인 서양의학계와 국내에는 달리 좀더 나은 치료법을 찾아 쓰거나 직접 개발하려는 선구적인 의사들이 많다는 것이다. 학자로서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앞장서서 간다는 자부심도 이들에겐 중요한 동기 부여 요소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난소암 수술법을 계속 발전시키며 국제학회의 주목을 받고 있는 국립암센터 임명철 박사팀이 바로 그런 사례다. 암이 다른 곳으로 전이되면 수술하지 않고 항암치료를 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난소암은 예외다. 간이나 대장 소장 비장 등 어디든 전이돼 있으면 몽땅 잘라내야 한다. 땅콩만한 암 덩어리는 수술 전 영상검사에서도 발견되지만, 깨알만한 종양은 개복을 해봐야 보이거나 만져진다. 이런 자잘한 암까지 다 찾아내 많이 잘라낼수록 환자의 예후가 좋고 생존율도 높아진다. 난소암이 유독 누가 수술하느냐에 따라 생존율이 크게 차이 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난소암이 간문(간에서 혈관 신경 등이 드나드는 입구)이나 횡격막에 전이되면 절제가 불가능하다고 여겨왔다. 임 박사팀은 최근 의료계의 이 통념을 깼다. 지난 4월 체코에서 열린 유럽부인종양학회에서 횡격막을 비롯해 제거가 어렵다고 알려진 전이 난소암들을 깨끗이 잘라내는 장면을 비디오에 담아 보란 듯 발표한 것이다. 당시 학회 전체에서 발표된 난소암 수술 비디오 10편 중 4편이 임 박사팀 작품이었다.

임 박사는 "처음엔 우리나라가 외국의 난소암 수술법을 따라가는 입장이었지만, 이젠 우리가 세계 최고수준이 됐다"며 "우리 팀이 발표한 비디오와 논문을 보고 같은 방식으로 수술을 시작했다는 외국 의사도 여럿"이라고 말했다. 임 박사와 함께 여성암 수술법을 연구하는 박상윤 국립암센터 자궁암센터장은 "우리 난소암 수술법은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받고 있다"며 "국내외 의사들을 체계적으로 교육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 의료분야 양극화가 의학한류에 '장벽'

미국이나 유럽과 견주어도 실력이 손색이 없거나 오히려 더 낫다고 국내 많은 의사들이 공통적으로 꼽는 의학 분야는 바로 내시경 시술이다. 가늘고 긴 관 끝에 거울이나 카메라 등 각종 도구를 달아 몸 속에 집어넣고 모니터 화면으로 장기 내부를 관찰하며 병을 진단하고 시술할 수 있게 만든 내시경은 사용하는 의사의 미세한 손놀림에 큰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어 가장 두꺼운 부분이 3mm 정도밖에 안 되는 대장 벽면에 붙어 있는 암 덩어리를 벽면이 다치지 않게 내시경으로 감쪽같이 도려내기는 웬만한 손기술로 할 수 없다.

박동일 강북삼성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한국인 특유의 꼼꼼함과 끈질긴 성향이 내시경 실력을 향상시키는데 적잖이 기여했다"고 말했다. 진단도 시술도 잘 하니 내시경 분야가 학문적으로도 자연스럽게 발전했다는 것이다.

장기이식과 암 분야도 의학 선진국에 뒤지지 않는다. 최근 서울아산병원 의료진이 성공한 7개 장기 동시 이식은 세계적으로도 극히 드물다. 암 수술은 여러 나라 외과의사들이 배우러 온다. 방영주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암 수술을 워낙 많이 하다 보니 반복되는 경험에서 얻는 지식과 기술이 상당하다"며 "같은 시간 동안 외국 의사에 비해 훨씬 많은 환자를 봐야 하는 게 우리 의학의 약점이면서 동시에 강점인 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내시경 시술이나 암처럼 상대적으로 시장성이 높거나 환자가 많은 분야가 아니면 발전은커녕 학문의 흐름마저 끊길 위기에 놓인 경우도 적지 않다. 수부외과를 공부하고 개원가에서 절단된 손가락을 이어 붙이는 미세접합수술을 하고 있는 여용범 강남중앙병원 원장(정형외과 전문의)은 "개원가에 유일하게 남아 있던 미세접합수술 수련병원(전공의에게 임상 교육을 시킬 수 있는 병원)마저 최근 문을 닫았고, 대형병원에도 이런 수술 하는 의사는 드물다"며 "10년쯤 뒤면 손가락 접합수술 받으러 외국으로 나가야 할 판"이라고 한탄했다. 힘들고 어려운 진료과정에 비해 의사가 경제적, 사회적으로 얻을 수 있는 보상이 다른 분야보다 상대적으로 적어 지원자들이 나서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손가락 접합수술은 1980년대 후반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처음으로 열 손가락이 다 잘린 환자의 손을 원래대로 회복시키면서 서양을 앞서가기 시작했다. 처음 열 손가락을 접합했던 김우경 고려대구로병원장(성형외과 전문의)은 "손가락 몇 개 없어도 생명엔 지장 없으니 포기하는 게 당시 서양의학의 상식이었다"고 말했다. 그랬던 분야가 이젠 존폐를 걱정하는 처지가 됐다.

흉부외과나 산부인과에 지원하는 의사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말은 이제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현장 의사들이 밀려드는 환자만 보기도 벅차다. 연구할 여력도 가르칠 후학도 점점 줄어간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40대 중반쯤 되면 대다수 의사가 연구할 생각은 접고 '현실 순응형'으로 돌아선다"고도 털어놨다. 이대로 가다간 이른바 잘 나가는 분야와 비인기 분야 간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질 수 있다고 의료계는 우려하고 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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