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한일 양국의 원자력안전체계를 나란히 정비시켰다. 양국은 오랫동안 원자력안전기구를 교육과학기술부와 경제산업성에 각각 두어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기본원칙으로 꼽은 '독립성' 측면의 의문이 끊이지 않았다. 한국이 한 걸음 앞서갔다. 지난해 7월 원자력안전위원회 설치법 제정에 이어 10월에 독립적 위원회가 출범했다. 일본은 20일 마련된 원자력규제위원회설치법에 따라 환경부 외국(外局)으로 위원회가 설치된다.
■ 이웃나라 사고에 놀라 체제정비를 서둔 한국에 비하면 한참 굼뜨다. 그러나 원래 느린 '일본 시간'에 비추면, 논의 시작 1년 남짓에 법제 정비까지 마쳤으면 이례적 '신속 대응'이다. '핵 알레르기'와 이를 강화한 원전사고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다. 일본의 '핵 알레르기'는 실은 트라우마다. 세계 유일의 원자탄 피폭과 잇따른 핵 안전사고 경험에서 비롯한 반응이니, '일반적으로 무해한 외부 요인에 대한 이상 과잉 면역반응'과는 다르다.
■ '일본의 핵 무장 길이 열렸다'는 최근의 소동에서 일본의 핵 트라우마와 한국의 '대일(對日) 알레르기'를 함께 확인했다. 도쿄신문의 첫 보도를 뜯어보니 문제의 '안전보장'은 '안보를 위한 핵 이용'과는 거리가 멀다. 법문의 '안전보장에 이바지한다'의 주어는 '핵'이 아니라 '원자력 이용의 안전확보'다. 공명당 에다 야스유키(江田康行) 의원이 "핵 방호 관점에서 넣었다"고 명언했듯, 서울에서 열렸던 핵안보정상회의의 '핵 안보'에 가깝다.
■ 반핵ㆍ평화 지식인 성명과 '군사이용으로 이어질 우려를 씻을 수 없다'는 해설도 핵 트라우마의 표현일 뿐 '핵 무장' 해석의 근거이기 어렵다. 그런 엄청난 일을 법 개정 절차 다음의 두 번째 문제로 삼을까. 백 번 물러나 '안전보장'을 '실질적 핵 무장의 실마리'로 보더라도, 일본 헌법 9조에 정면 배치된다. 헌법의 규범통제나 합헌적 법률해석은 그런 뜻의 해석을 차단한다. 일본의 트라우마가 애써 건진 우려를 한국의 알레르기가 많이도 키웠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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