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동물/임정은 지음/다른 발행ㆍ216쪽ㆍ1만3,000원
45억년쯤 되는 지구 역사를 1년으로 압축했을 때 12월 31일 오후 5시 정도에 특이한 동물이 등장했다. 불과 얼마 전에 등장한 이 동물은 눈 깜짝할 새 엄청나게 불어나 온 지구를 장악했다. 워낙 똑똑한 덕에 지구에 훨씬 오래 전부터 살아온 다른 동물들을 이용하며 생태계의 최고 자리를 꿰찼다. 그러더니 급기야 동물이라 불리기를 거부하기에 이르렀다. 침팬지와 유전자가 98%이상 일치하는 데도 침팬지와 동일하게 여겨지는 걸 싫어한다. 이 '특이한 동물', 바로 인간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동물이라는 사실을 잊고 산다. 저자는 심지어 인간이 여전히 자신들만을 위해 다른 동물을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신선하고 맛있는 고기와 우유를 먹기 위해 소에게 항생제와 호르몬을 투여하고, 사람의 고통을 덜기 위한 약을 개발하려고 원숭이와 쥐를 희생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선사시대부터 지금까지 사람을 위해 이용돼온 동물의 역사를 이 책은 쉽고 간결하게 정리해 보여준다.
물론 달라지고는 있다. 가축의 복지를 이야기하고 동물실험을 줄이기 시작했다. 1983년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한 국제심포지엄에선 애완동물 대신 반려동물이란 말을 쓰자는 제안도 나왔다. 애완(愛玩)에는 동물을 장난감 같은 수준으로 대하는 시선이 깔려 있지만, 반려(伴侶)에선 동물에 대한 배려와 책임감이 느껴진다.
30년이 지나 반려동물이란 말이 익숙해졌지만, 그래도 유기견은 사라지지 않고 모피코트가 불티 나게 팔린다. 그 이유는 인간 역시 개나 양, 곰, 비버 등처럼 지구에서 살아가는 한 동물이라는 생물학적 사실을 너무 쉽게 간과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 책의 제목 '세상을 바꾼 동물'은 같은 맥락에서 중의(重義)적이다. 인간이 세상을 바꾸는 데 이용돼 온 동물들의 이야기면서 동시에 지구를 모든 동물이 대등하게 공존하는 세상으로 바꿀 수 있는 동물이 바로 인간임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대기 순으로 외우는 딱딱한 세계사가 아니라 동물을 통해 꿰뚫어보는 말랑말랑한 세계사를 접하고 싶은 청소년이 읽어볼 만하다.
임소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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