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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가장 인간적인 인간' 인공지능 시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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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가장 인간적인 인간' 인공지능 시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입력
2012.06.22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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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간적인 인간/브라이언 크리스찬 지음ㆍ최호영 옮김/책읽는수요일 발행ㆍ434쪽ㆍ1만6000원

인간은 구문 규칙이 있는 언어를 사용하는 유일한 동물일까. 언어학자들은 그렇다고 말한다. 하지만 기호를 조합할 줄 아는 원숭이 사례를 제시하는 영장류학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믿는다. 인간은 도구를 사용하는 유일한 동물일까. 이건 분명 아니다. 심지어(?) 낙지도 코코넛 껍질을 갑옷으로 사용할 줄 안다. 그럼 수학 같은 고도의 지적 작업은 인간의 전유물일까. 안심하지 마라. 인간은 계산에서 컴퓨터에 밀린지 오래다.

그럼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인간의 뇌를 대신할 인공지능(AI) 기술이 발전하고 있는 현대에도 여전히 의미 있는 인간 고유의 특성이란 대체 어떤 것일까. <가장 인간적인 인간> 은 미국의 젊은 과학저술가이자 시인 브라이언 크리스찬(28)이 2009년 튜링 테스트라는 이벤트에 참가하면서 가진 이런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찾아간 책이다.

튜링 테스트는 컴퓨터과학의 창시자 중 한 사람인 영국 수학자 앨런 튜링의 제안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와 1991년 처음 시작된 인간 대 컴퓨터의 대결 게임. 심사위원단이 인간인지 컴퓨터인지 알 수 없는 상대방과 컴퓨터 채팅으로 각각 5분 정도 대화를 나눈다. 잡담도 있고 지식을 물어보기도 한다. 심사위원은 대화를 끝내고 10분 생각한 뒤 둘 중 어느 쪽이 인간인지를 정하고 그 판단에 대한 확신의 정도를 점수로 매긴다. 제일 높은 점수를 얻은 프로그램은 '가장 인간적인 컴퓨터', 가장 높은 점수를 얻은 사람은 '가장 인간적인 인간'이라는 상을 받는다.

튜링은 이 테스트를 제안하면서 2000년쯤이면 컴퓨터가 심사위원들 중 30%를 속일 것이고 그 정도면 기계가 생각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그런데 2008년 대회에서 컴퓨터 프로그램이 이 30%에 거의 육박하는 성적을 냈다. 저자가 이듬해 대회에 참가하기로 결심한 이유다.

컴퓨터와 인간의 대결 이벤트는 여러 종류가 있다. 게리 카스파로프와 IBM 블루딥의 체스 대결, 퀴즈쇼 '제퍼디' 출연자 켄 제닝스와 역시 IBM 컴퓨터의 퀴즈대결은 유명하다. 그러나 누가 더 지식이 많은지, 논리적으로 계산ㆍ예측하는지를 비교하는 이런 게임과 튜링 테스트는 성격이 다르다. 컴퓨터와 인간의 차이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이 테스트가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그해 테스트에서 '가장 인간적인 인간'에 꼽힌 저자는 테스트 참가를 전후해 컴퓨터공학, 철학, 인간학, 문학 등 다양한 장르와 지식에 걸쳐 이런 사색을 전개해 나간다. 잘 설계된 컴퓨터 대화프로그램은 유머러스하고 임기응변에도 강하다. 하지만 그 능력이 빛을 발하는 것은 짧은 문답일 경우라고 그는 지적한다. 대화가 길어지면 드러나야 하는 일정한 스타일이나 관점을 찾기 어렵다. 소설을 기계로 번역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보는 것도 그 때문이다.

무엇보다 기계의 방식에서는 '기억'이 작동하지 않는다. 저자는 컴퓨터를 영화 '첫 키스만 50번째'에서 사고로 장기기억을 형성하지 못하는 드류 베리모어에 비유한다. 그녀에게 연인 샌들러는 '좋아하는 타입'일 따름이지만, 그녀의 과거 만남과 기억의 지층 위에 서 있는 샌들러에게 베리모어는 '특별한 존재'이다.

컴퓨터 프로그램은 또 맥락을 감안하지 않는 '상태독립적'인 대화를 하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사람들이 싸울 때 맥락에서 벗어난 되받아치기를 무한반복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는 '만일 인간의 대화가 이런 수준으로 떨어진다면 기계는 당연히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고도 남을 것'이라며 그런 의미에서 '기계가 자신을 좀 더 인간적인 삶을 살도록' 부추긴다고 말한다.

폰 노이만이나 튜링 또는 애니악 연구자들은 컴퓨터를 구상하면서 '외부 세계와 전혀 교류나 소통을 하지 않은 채 오로지 의식적 사고를 통해서만 상태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가정을 했다. 이 모델의 가장 중요한 결점은 바로 '정신이 신체를 가지고 있다는 점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컴퓨터는 어떤 문제, 특히 수학적이고 논리적인 문제를 푸는 방식을 모형화한 것일 뿐 우리가 어머니를 알아보는 방식을 모형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후자는 언어와 논리를 담당해 인간의 뇌 속에서 우월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좌반구의 몫이 아니라 우반구의 영역이다.

영화 '터미네이터'나 '매트릭스'는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암울한 세상을 그린다. 하지만 저자는 인공지능의 시대가 열리면서 플라톤적이고 데카르트적인, 신체와 정신을 분리해 다분히 한쪽에만 초점을 맞춘 지금까지의 삶을 청산하고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 자신에게 초점을 맞출 수 있게 되었는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세속주의와 경험주의를 새로 볼 수 있고, 인간 이외의 다른 유기체들이 지닌 인지적 또는 행동적 능력들도 재발견할 수 있다.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등장시켜 가며 과학과 문학, 예술을 경계 없이 넘나드는 글쓰기를 보여주는 저자는 그래서 이렇게 결론 내린다. 인공지능은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의 적이 아니며 더 이상 인간적이지 않은 부분들만 먹어 치워서 우리의 건강이 회복되도록 도와주는 존재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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