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의회가 자국 원자력규제위원회 설치법을 앞으로 핵무장 추진까지 가능한 방향으로 전격 개정해 버렸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개정 과정도 납득하기 어려운 방식을 통해서다.
중의원(하원)은 그제 설치법 부칙 개정안의 원자력 이용 목적에 '국가의 안전보장에 이바지 한다'는 내용을 슬며시 삽입해 통과시켰다. 하지만 이는 상위법인 원자력기본법에도 어긋날 뿐 아니라, 일본 핵무장 가능성과 관련해 주변국에 적지 않은 불안감을 던지고 있다. 특히 중의원은 법안 통과 때까지 관련 내용을 일본 국민에게조차 전혀 공개하지 않은 채 날치기식으로 처리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더해준다.
이번 입법으로 일본이 당장 핵무장에 나설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우선 핵무장 추진은 '전쟁과 무력행사 포기'를 규정한 일본 헌법과, '핵무기를 제조하지 않고, 보유하지 않으며, 도입하지도 않는다'는 1968년의 '비핵화 3원칙'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현실적으로도 일본 사회에서는 핵무장이 안보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내려진 지 오래다. 일본이 핵무장에 나서면 역내 핵 군비경쟁이 가열될 게 분명하며, 이 경우 영토가 작아 1차 핵 공격조차 견딜 수 없는 일본으로서는 위험만 커진다는 논리다.
우려되는 건 날로 기세를 높여 가고 있는 극우세력의 비현실적인 맹동(盲動)에 대한 일본 사회의 건전한 저항력이 위축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번 사건 과정에서도 정부 개정안에조차 없었던 문제 내용의 삽입을 주도한 건 시오자키 야스히사(鹽崎恭久) 의원 등 자민당 내 극우 일파였다. "강한 일본을 만들려면 핵무장이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오사카 시장 등을 따른 셈이다. 하지만 집권 민주당 의원들조차 견제에 나서기는커녕 시류에 편승해 날치기처리를 공모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과거 일본을 유례 없는 전화(戰禍)의 구렁텅이로 몰아 넣은 건 한줌 군국주의자들의 야욕만은 아니었다. 맹동을 방기한 국민 다수의 무기력이 비극을 낳았다. 일본 사회가 하루빨리 건전한 집단이성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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