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와 그의 지적 반려자였던 엥겔스가 남긴 방대한 저술을 집대성한 '정본(正本)' 전집이 번역 출간된다. 완성된 원고뿐 아니라 집필 과정의 수정 원고, 단상 상태로 남아 있는 초고, 제 3자와 주고 받은 편지와 독서 노트까지 빠짐없이 망라한 전집이다.
인문ㆍ사회과학 전문 출판사인 도서출판 길은 마르크스-엥겔스 전집의 결정판인 '신(新) MEGA'(Marx-Engels Gesamtausgabe)의 한국어판 출간을 위해 18일 저작권사인 독일 아카데미출판사와 1차분 8권에 대한 정식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국내에서 마르크스ㆍ엥겔스 저작은 1987년 번역 출간된 마르크스의 <자본> 을 시작으로 단행본이나 선집이 나왔을 뿐 전집은 없다. 자본>
신메가는 그동안 마르크스 엥겔스 전집의 정본으로 알려진 '메프'(MEWㆍMarx-Engels Werk)본과 '구(舊)메가'본의 한계를 뛰어넘는 결정판이다. 구동독이 기획해서 40여년 작업 끝에 1990년 45권으로 완간된 메프는 가장 널리 쓰이는 판본이지만, 마르크스 엥겔스 저작을 정치적으로 선별해서 발간했기 때문에 불완전하다. 소련이 1920년대 레닌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추진한 구메가 역시 정치적ㆍ이데올로기적 개입이 많다. 구메가는 레닌 사후 중단 위기를 겪으며 어렵게 이어지다가 소련 몰락 이후 다시 중단된 상태다. 반면 신메가는 마르크스 엥겔스 사상의 전모를 정치적 왜곡 없이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게 목표다.
이번에 계약한 신메가 1차분 8권은 <잉여가치 학설사> <헤겔 법철학 비판> <경제학 철학초고> <공산주의자 선언> <경제학 비판(1861~1863년 초고)> 과 프랑스 혁명 3부작이다. 2015년 완간을 목표로 계약 전인 지난해부터 번역에 착수, 내년부터 책이 나올 예정이다. 경제학> 공산주의자> 경제학> 헤겔> 잉여가치>
도서출판 길은 이를 위해 마르크스 엥겔스 전문가들로 번역편집위원회를 구성했다. 강신준 동아대 교수가 위원장을 맡고, 경제학 사회학 역사학 철학 등 여러 분야에서 명지대 김호균, 고려대 김정로 김경수, 한양대 신명훈 교수 등이 참여한다.
번역편집위원장인 강신준 교수는 "신메가는 '역사적ㆍ비판적' 연구를 통해 마르스크 엥겔스의 맨 얼굴을 드러내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모든 문헌을 빠짐없이 시기적으로 정확하게 배열하고, 정치적 편향에서 벗어나 그들의 육성을 고스란히 전하는 것이 신매가의 편집 방침"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마르크스 저작 <자본> 의 번역자로 유명한 강 교수는, 소비에트 사회주의 몰락으로 마르크스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주장에 대해,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마르크스에서 길을 찾아야 할 때라고 강하게 반박한다. 자본>
"2008년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으로 세계적 공황이 시작된 이래 유럽과 일본의 지성계는 마르크스를 재조명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졌습니다. 공황의 해법을 말한 학자는 마르크스뿐이기 때문이죠. 자본주의 체제의 한계를 넘어설 대안도 마르크스에게 있습니다."
이번 신메가 번역 출간은 '정본' 문헌 없이 이뤄져 온 국내 마르크스 연구에 획기적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학문 연구의 기초 자료로서 문헌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국내 학계는 마르크스를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연구해온 셈이죠."
신메가 작업을 좀더 체계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강 교수는 최근 재직 중인 동아대에 마르크스 엥겔스 연구소를 설립했다. 공식 명칭에 마르크스가 들어간 연구소로는 국내 처음인 이 곳은 신메가를 맡을 번역 인력을 키우고, 관련 문헌 자료를 수집ㆍ정리하는 한편 국제적인 학술 교류를 통해 마르크스 연구의 중심 역할을 할 계획이다.
문제는 재정과 인력이다. 국가적 지원이 있어도 수십 년이 걸릴 방대한 작업을 작은 연구소와 출판사가 도맡기는 벅차기 때문이다. 중국은 신메가 전체 114권에 대한 저작권 계약을 맺고 국가 사업으로 번역을 한창 진행 중이고, 일본은 1978~94년 신메가 9권을 번역 출간했다. 고전 번역의 결정판을 내는 중요한 작업을, 마르크스를 경계하는 정치적 입장 때문에 모른 척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 아닐까.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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