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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주사파와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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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주사파와 MBC

입력
2012.06.21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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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된 가정이지만, 만약 박정희의 사후 곧바로 민주정부가 수립되었다면 자생적 주사파가 탄생할 수 있었을까? 최소한 세를 크게 불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1980년대의 주사파는 전두환, 노태우의 군사정권이 잉태시켰고 자양분을 제공했다. 정당성이 결여된 폭압적 권위주의 체제를 부정하는 과정에서 상상적 북한을 현실적 대안으로 간주한 세력이 주사파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90년대 중반부터 국가의 폭압성은 완화되기 시작했고, 사상의 자유가 존중되기 시작했다. 다양한 사상과 이념이 공개적으로 경합하고 평가 받을 때, 낡은 축음기 소리 같은 주체사상에 매혹될 소비자는 극소수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주사파'라는 용어가 다시 주목을 받게 되었을까. 물론 그 발단은 통합진보당의 일부 세력이 '종북'의 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알려준 일련의 사건들이었다. 하지만 한번 점화된 주사파 논란이 활활 탈 수 있었던 이유는 주사파를 짐승보다 못한 존재로 욕해도 용인되는 사회 분위기, 그리고 그 분위기를 이기적 목적으로 활용하는 정치인과 언론이 있기 때문이다. 잠재적 주사파와 주사파 혐오자, 이 둘의 얼굴은 사실 크게 다르지 않다. 자신의 이념을 신봉한 나머지 비판을 용납지 않고 성찰을 거부하는 자세.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들어낸 자리에 '주체'나 '반공'이라는 절대신앙을 채워 넣는 행태. 게다가 이념이나 철학이 아닌 파벌이나 이익을 동력으로 해서 굴러가는 세력이라는 점도 비슷하다.

그러니 지금의 난데없는 주사파 논쟁은 결국 두 전체주의 간의 갈등인 셈이다. 공산주의의 대안이었던 히틀러의 나치즘이 오히려 전형적인 전체주의적 통치 사례로 꼽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전체주의 정권은 역사의 미스테리를 단순명쾌하게 답하는 이데올로기를 제시함으로써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낸다. 공산주의는 계급투쟁의 역사를, 나치즘은 인종투쟁의 역사를 내세운 차이가 있을 뿐이다. 지금의 주사파 집단이나 주사파 혐오세력을 전체주의 '체제'라 지칭하는 것은 비약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두 집단 모두 전체주의적 '요소'가 강하게 작동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전체주의적 요소는 도처에 있다. 이틀 전 여덟 명째 해고자를 만들어 낸 MBC의 작태는 나치즘의 정서를 이어받은 모습이다. 전체주의에 권위주의, 그리고 폭압적 도구를 활용하는 방식까지 닮아있다. 집권자 김재철 사장은 노조의 파업을 좌파 정치행태로 간명하게 정의하면서 과두적 관료조직을 동원해 비판자들을 제거시켜 나간다. 집권자 개인의 비리나 흠결은 중요하지 않다. 조직 외부에 우군도 많다. 히틀러에게 무솔리니가 있었듯이 김재철 사장에게는 묵시적 동조자인 현 집권세력과 미래권력, 그리고 검찰과 보수언론이 있다. 이들 중 누구도 김재철 사장의 배임 혐의나 여성 관련 의혹들, 그리고 비상식적인 대량 해고에 대해 입을 열지 않는다. 이념이 아니라 이익에 근거한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최승호 PD나 박성제 기자같은 재원을 만들어내기 위해선 만만치 않은 시간과 노력이 투자돼야 한다. 그러나 MBC는 자사가 투자해서 길러낸 기둥인력들을, 게다가 노조의 간부도 아닌 이들을 변변한 징계사유도 없이 해고했다.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유태인들을 내쫓거나 죽였던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얘기 좀 하자는 야당 정치인이나 기자들은 꿋꿋하게 피해다니고, 정작 객관적 비판을 듣겠노라고 '모셔온' 시청자평가원 두 명은 제 발로 걸어나가게 만든 집권자. 외부의 비판적 시선을 한사코 차단하는 북한의 위정자에 비유해도 별 무리 없어 보인다.

작금의 주사파 논란은 무지막지한 매카시즘으로 나아갈 것이 아니라 이 사회 곳곳에 스며있는 전체주의에 대한 반성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석기 의원과 동부연합을 욕하고 비판하는 사람이라면, 똑같은 이유로 김재철 사장과 MBC의 칼춤꾼들을 욕해야 한다. 이들을 비호하는 방송문화진흥회와 방송통신위원회를 비판해야 한다. 정말로 자유민주주의를 원한다면 말이다.

윤태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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