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치소에서 지내는 기간을 최대한 늘려라." 징역 좀 살아본(?) 수용자들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형이 확정되지 않은 미결수들이 구금되는 구치소에서 생활하는 것이 형이 확정된 기결수가 지내는 교도소보다 여러모로 편하기 때문이다.
구치소의 가장 큰 매력은 밥짓기, 청소 등 강제 노역이 부과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교도소에 수용된 기결수는 의무적으로 일정시간 고된 노역에 동원되지만 구치소의 미결수는 판결 확정 전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강제노역이 부과되지 않는다.
외부인 접견이 용이하다는 점도 수용자들이 구치소를 선호하는 이유다. 구치소 수용자는 죄질과 상관없이 1일 1회 일반 접견이 허용되고, 변호사 접견은 무제한이다. 반면 교도소는 죄질에 따라 접견 기회가 최소 월 4회까지 제한된다. 구치소는 외부인들이 자주 드나들기 때문에 교도관들의 태도도 한결 부드럽다. 한 변호사는 "죄는 전부 인정하면서도 '구치소에서 지내는 기간을 최대한 늘릴 수 있는 방법이 없느냐'고 물어오는 의뢰인들이 적지않다"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1심에서 금고형이나 징역형이 선고된 수용자들이 고의적으로 판결에 불복하면서 구치소 수감 기간을 늘리려는 '꼼수'를 쓰기도 한다. 재판을 길게 끌기 위해 무의미한 증인 신청을 남발하는 경우도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양형 범위 내 최저 형량이 선고돼 감형의 여지가 없는데도 무리하게 상소하는 경우는 구치소에서 지낼 수 있는 기간을 늘리기 위한 수법으로 보면 된다"며 "이는 특히 상대적으로 교육수준이 높고 수용 경험이 많은 마약사범들이 자주 쓰는 수법"이라고 귀띔했다.
이런 '고의성 상소'는 고등법원과 대법원에 사건이 몰리게 만들어 '사건 적체 현상'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정작 급하게 판결을 받아야 하는 이들에게는 피해가 가는 것이다. 종전에는 판사들이 고의성 상소를 막기 위해 '판결 선고 전 구금일수는 전체 구금일수에 일부 또는 전부 산정할 수 있다'는 형법 조항을 활용하기도 했다. 고의성이 다분한 경우, 구치소 구금일수에서 10~30일 정도를 뺀 일부만 전체 구금일수에 산정해주는 식이다. 하지만 2009년 미결 구금기간 58일 중 28일만 산입돼 감옥생활을 사실상 한 달 더 하게 된 한 성범죄자가 낸 헌법소원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미결 구금기간을 일부만 산정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결정, 그마저 불가능해졌다.
한 전직 판사는 "상소를 남발해도 별다른 제지 수단이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고의적 판결 불복으로 보일 때는 가능한 빠르게 재판을 진행시킨 뒤 상소를 기각해 미결 구금기간을 최대한 줄이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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