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도 좋아하세요? 라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야구에 관련한 책을 낸지라, 모종의 편견으로 물어오는 질문이다. 난 대답한다. 축구? 좋아합니다. 대한민국 사내 중에 공식적으로 축구 싫어하는 사람 찾기 힘들다.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 누구 좋아하세요? 루니? 호날두? 메시? 아니오. 아닙니다. 저는 이동국(전북), 에닝요(전북), 하대성(서울), 이승기(광주, 가수가 아니다)를 좋아합니다. 이때 상대방은 두 가지 반응을 보이게 된다. 어리둥절하거나 동지의식을 느끼거나.
지금은 유럽선수권 대회, 다른 말로 유로2012가 한창이다. 폴란드와 우크라이나에서 공동 개최한 이번 대회는 현재까지 8강이 가려졌고, 개최국은 아쉽게도 모두 탈락했다. 스페인, 잉글랜드, 독일, 프랑스 등 축구 강대국이 토너먼트에 진출했고 네덜란드 러시아 등 이변의 희생자가 되어 일찍 고국으로 돌아간 팀도 있다. 우리나라 시간으로 경기는 새벽 1시 넘어서 시작한다. 두 경기를 연속해서 보면 동이 튼다. 수면부족을 호소하는 축구팬을 종종 보는 것이 우연이 아닌 것이다. 최근 경제 위기로 휘청거리고 있는 유럽의 사정과는 상관없이, 그들의 축구는 아름답고 정교하며 훌륭하다. 경기장을 가득 매운 팬들의 함성 소리, 클래스가 다른 선수들의 움직임, 톱니바퀴처럼 움직이는 팀 전술, 화려한 카메라 워크. 축구하면 유럽이다.
같은 기간에 우리나라에서도 여기저기에서 축구 경기가 열렸다. 리그 경기와 FA컵이 열렸고, 거기에도 승자와 패자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가까운 곳에서 열린 축구이건만, 지구 반대편의 그것에 보내는 열기에는 한참 모자란 것이 사실이다. 최근에 열린 FA컵 16강전은 K리그 최고의 흥행카드인 서울과 수원의 대전이 있었다. 많은 관중이 왔지만 중계방송을 찾긴 어려웠다. 라이벌 의식이 치열한 두 팀은 격렬한 몸싸움을 마다하지 않았고, 많은 경고가 나왔으며 위험한 상황도 연출됐다. 그런데 사람들은 모른다. 우리의 선수들의 우리의 축구 경기장에서 거친 축구를 했지만 모른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의 슈팅이 골라인을 넘었고, 그것이 애석하게도 심판진의 오심에 의해 노골 처리된 것은 아주 잘 안다.
축구 선수 이영표는 말했다. 진정 축구를 아는 사람은 조기축구에서도 보는 재미를 찾는다고. 나는 축구 경기가 끝나고 그라운드에 벌렁 누워서 잠시 숨을 고르는, 자신의 모든 힘을 그라운드에 부려 놓고 끝내 일어나지 못하는, 그런 장면이 참 좋다. 그 숨소리가 좋다. 내 곁에 있는 사람이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바로 내가 확인해주는 것이다. 이런 열정을 확인하는 것이 축구라고 생각한다. 토레스와 판 페르시가 유니폼을 바꿔 입는 장면은 판타지처럼 다가오지만 결국 온전한 내 것이 아니다. 그건 너무 멀다. 유럽의 명품 축구를 시차를 극복하고 열렬하게 보는 것은 결국 액세서리다. 거울을 보자. 잔뜩 구겨진 셔츠, 밑단이 찢어진 바지, 그러나 으리으리한 팔찌.
시인 이준규는 그야말로 축구 마니아다. 지면에서는 좋은 시로, 운동장에서는 화려한 축구 기술로, 술자리에서는 해박한 축구 지식으로 사람을 매료시키는 시인이다. 그는 U리그라 불리는 대학리그의 팬이다. 연세대나 고려대, 숭실대나 홍익대 등을 찾아 다니며 젊은 축구 선수의 플레이에 감탄하고, 자기 안에 간직하고 있다가 동료들을 만나서 풀어놓는다. 나는 청소년선수권대회나 올림픽 예선이 있기 훨씬 전에 이준규 시인에게서 백성동과 김보경의 존재를 들어 알았다. 그와 이야기를 하는 중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경기가 TV에서 나오면 그는 감탄사를 연발한다. 우와! 우와!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다시 술잔에 집중한다. 그에게 유럽 축구는 축구의 감탄사이지 명사나 동사, 혹은 조사는 아닌 것 같다. 문장이 만들어지기 위해서 우선 필요한 것은 감탄사가 아니다. 명사고 동사며 조사다.
축구는 동네 스포츠여야 한다. 애국심으로 K리그를 보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축구는 별다른 도구와 복잡한 규칙 없이 너와 나 누구든 할 수 있는 운동이며, 그래서 세계적으로 인기가 높다. 스타플레이어 때문에, 무회전 프리킥 덕분에, 엘클라시코 때문에 인기가 있는 게 아니다. 그런 건 보석이다. 보석이 있으면 좋지만 그것이 없어도 살 수는 있다. "유럽 축구 없으면 그럭저럭 살겠지만 동네 축구가 없으면 진짜 죽을 것 같다." 더 이상 오타쿠이길 거부하는, 축구팬의 덕목일 것이다.
서효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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