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규모가 8조3,000억원에 이르는 차기전투기(FX) 3차 사업이 입찰 제안서 미비로 재입찰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는 등 시작부터 표류하고 있다. 특정 후보 기종에 특혜를 주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데 이어 재입찰이라는 초유의 상황까지 야기되자 정부의 한심한 사업 관리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
방위사업청은 7월 5일 FX 사업의 재입찰을 실시한다는 공고를 20일 새로 냈다. 19일 입찰 제안서 접수를 마감한 결과 사업에 참여한 미국의 록히드마틴사와 보잉사, 유럽항공우주방위산업(EADS) 중 보잉을 제외한 2개 업체의 서류가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가 2007년부터 규모(60대)를 밝혀온 수조원대의 사업을 놓고 서류조차 제대로 갖추지 않고 입찰에 나선 참여 업체들의 행태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군 주변에서는 시험 평가를 실제 전투기 비행이 아닌 시뮬레이터로 대체하겠다고 밝혀 비판 여론에 직면한 록히드마틴이 고의로 서류를 미비하게 제출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여론이 악화되자 호전될 때까지 시간을 벌어보려는 의도가 감지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우리 정부가 록히드마틴의 F-35를 사실상 내정했다는 설까지 이미 나왔던 상황에서, 록히드마틴이 얼마나 선정을 낙관했으면 안이하게 서류를 준비했겠느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EADS가 제안서 32권 대부분의 한글본을 제출하지 않은 것도 이미 F-35 선정을 예상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반면 한 업계 관계자는"기술 이전을 꺼리는 미국 정부의 압박으로 록히드마틴이 기술 이전 부분을 서류에 명확히 표현하지 않아 우리 정부가 사실상 퇴짜를 놓았을 수도 있다"고 추측했다. 록히드마틴은 제안서 24권 중 절충교역 관련 내용이 포함된 3권 등 4권의 한글 판본을 누락시켰는데 절충교역 내용 중 기술 이전이 포함된다.
이유가 어찌됐든 창군 이래 최대의 단일 무기사업을 추진하는 주무 부처인 방위사업청의 허술한 사업 관리에 대한 비난이 거세다. F-15K 40대를 도입한 1차 사업 당시 25개월이나 걸렸던 사업 기간을, 최신형 전투기 60대를 도입하는 이번 사업에서는 되레 10개월로 단축하면서까지 도입을 서둘렀던 방위사업청이 입찰 관리에 이 정도로 소홀했다는 게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특히 대선 전에 기종 선정을 마무리하겠다는 목표로 급하게 사업을 추진했던 방위사업청이 비판 여론이 일자 무리한 결정이라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주춤하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선 국면에서 정치권과 유권자들의 비판을 피하기 위해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방위사업청이 정치적 처신을 할 것이 아니라 국익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손민석 한국국방안보포럼 사무국장은 "최상의 기종이 선정될 수 있도록 시간을 두고 3개 업체의 전투기를 꼼꼼히 따져보되, 사업기간 동안 F-15K에 디지털 레이더를 장착하는 등 기존 전투기의 성능 개량으로 전력 공백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권경성기자 ficci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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