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인구는 지금 조사 방식대로라면 전세계적으로 줄어드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커버에서 커버로 이어지는 책만이 읽을거리는 아닙니다. 이렇게 다시 물어야 할 겁니다. ‘당신은 얼만큼 읽습니까’. 사람들은 이메일, 인터넷의 각종 자료 등을 끊임없이 읽고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이 제게는 ‘책’입니다.”
20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개막한 서울국제도서전 참석을 위해 방한한 지영석(51) 세계출판협회(IPA) 회장은 디지털화와 함께 변해가는 출판 환경에 맞춰 “책과 책을 만드는 것 모두를 새롭게 정의해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가 있는 IPA는 저작권과 출판인 권리 보호 등을 위해 1896년 설립된 국제기구. 미국 국적이긴 하지만 2년 전쯤 아시아계로 처음 그가 회장에 당선된 것은 적지 않은 화제였다. 미국에서 고교와 대학ㆍ대학원을 나온 그는 출판 유통업체에서 일한 뒤 세계 거대 출판그룹 잉그램, 랜덤하우스를 거쳐 지금 엘스비어 회장을 맡고 있다. 직원 1만명에 ‘랜싯’(의학), ‘셀’(생물학), ‘테트라헤드론 레터스’(화학) 등 유명 과학지를 내는 세계 최대 과학의학전문 출판사의 수장이다. 한국이 배출한 가장 걸출한 출판경영인을 들라면 그를 꼽아도 좋을 정도다.
미국의 전자책 보급 속도가 빠른 것을 그는 전적으로 아마존이라는 유통망의 영향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 중에서도 ‘킨들’이라는 값싸고 조작이 간단한 전자책 단말기의 보급이 결정적이다. IPA 회장 당선 직후 “10년 안에 전자책이 종이책을 앞지를 것”이라고 단언했던 그는 “그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다”고 했다. 미국에서는 2년 전만 해도 종이책과 전자책이 동시에 나오면 종이책이 80% 팔리고 전자책이 20% 팔리던 것이 지금은 전자책이 절반 이상 팔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미국에 이어 영국에서 독일에서 일본에서 그리고 한국에서도 벌어질 것”이고 “특히 일본은 11월께 아마존 킨들의 공식 판매가 시작되면 큰 충격을 받을 것”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이 같은 변화의 물결에 맞춰 그는 출판사를 새롭게 정의했다. ‘작가와 독자를 연결하기 위한 끊임없는 혁신’이라는 비전을 갖고 ‘정확한 정보를 적절한 맥락에서 적절한 사람들에게 빨리 전달하는 것’이 그에겐 출판이다. 그래서 출판사는 앞으로 “콘텐츠를 더욱 역동적이고 쓸모 있고 상호작용적이고 맞춤형이고 맥락적이며 검색하기 쉽게 만들어 수익을 창출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IPA 회장을 맡으면서 그가 가장 중요하게 다뤄온 문제는 두 가지다. 우선 출판물 저작권 문제. 콘텐츠의 디지털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본격적으로 대두된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의 저작권 예외 조항 논의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지가 세계 출판계로서는 큰 관심이다. WIPO는 정부의 문서보관서 소장 자료라든지 독서장애인들에 대한 저작권 적용 예외를 논의하고 있다.
또 하나가 디지털화에 따른 출판계의 대응이다. 전자책 시대의 도래를 인쇄본의 보급과 같은 혁명에 비유하는 그는 “개별 출판사의 부침은 있겠지만 출판계로서는 전혀 손해 볼 일 없는 변화”라고 거듭 말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류효진기자 jsknigh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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