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서 가정은 무의미하다고 한다. 시간을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동서고금의 서책은 옛일에 빗대기를 즐기고, 식의 역사 재조명은 인기를 끈다. 역사의 교훈은 실제 역사와 다른 경로를 상정해 대조해야 선명해지는 법이다. 특히 큰 선택을 앞둔 사람들에게 역사의 가정은 중요하다. 다양한 가능성을 이리저리 따져보는 사고실험을 거쳐야 미래를 향한 현재의 선택이 합리화된다.
과거에 비추어 이런 사고실험의 우선 대상으로 삼을 만한 것이 민주통합당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제휴다. 안 원장의 대선출마 의사는 확정적이다. 공개적으로 출마를 선언하진 않았지만 지금까지 많은 기회가 있었는데도 한 번도 가능성을 부인한 바 없다.
현재 양측은 후보단일화 시기와 방법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제1야당의 체면만 아니라면, 이해찬 대표가 제기했던 '2단계 경선'보다 민주당에 유리한 선택이 없다.
앞으로의 당내 경선이 흥행에 성공해도 국민 관심의 밀도와 지속성은 기껏해야 10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을 후보로 선출했던 당시 수준이다. 2002년에도 그것만으로는 '이회창 대세론'을 흔들 수 없었다. 월드컵 4강 신화 달성으로 개인적 인기가 치솟았던 '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 성공 이후에야 비로소 가능했다. 당시 정 후보가 민주당에 들어가 함께 치른 경선에서 노 전 대통령이 '단일 후보'가 됐더라도 최종 57만 표의 차이를 끝까지 지킬 수 있었을까?
어느 모로 보나 득표 효과는 '2단계 경선'이 월등하다. 다만 이런 고려를 무턱대고 앞세웠다가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자체 후보를 내지 못한 것과 더불어 정당으로서의 존재 의미를 의심받기 십상이다. 개별 경선후보들의 계산법이 다를 수도 있다. 그 결과적 타협이 안 원장의 조기 입당 촉구인 셈이어서 목소리는 크지만 순도는 떨어진다.
안 원장에게도 '단판 경선'은 부담스럽다. 열심히 정치공부에 매달려 온 그가 민주당 내 주자들에 비해 결속력이 열세라거나, '완전 국민경선'조차도 조직력에 적잖이 좌우됨을 모를까. 더욱이 입당의 전제조건으로 경선 룰을 최대한 유리하게 만들고, 경선에서 승리하더라도 본선 경쟁력의 열화(劣化) 우려를 떨치기 어려울 것이다. 끝까지 무소속으로 남은 박 서울시장 후보의 예는 물론이고, 과거 여론조사에서 개인적 지지도와 '민주당 후보'로서의 지지도가 크게 달라 출마를 포기했던 고건ㆍ정운찬 전 총리의 경우도 이리저리 살폈을 법하다.
따라서 그는 최대한 민주당과의 후보단일화 시기를 늦추어야 하고, 이 대목에서 민주당 주류와 속마음이 일치한다. 따라서 현재의 신경전과 무관하게 양측의 '2단계 경선' 합의는 별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굳이 합의랄 것도 없이 저절로 그리 되게 마련이다.
그런데 단일화 시기나 방법이 양측의 제휴를 가로막는 진짜 걸림돌일까. 현재 안 원장의 사고실험은 단일화 방법론이 아니라 민주당과의 '세력연합' 의 효용을 저울질하는 단계라고 짐작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선 승리의 초석이 된 'DJP 연합' 경과를 음미하고, 정몽준 전 대표가 선거 직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철회를 하지 않았을 경우의 '참여정부' 운영형태를 가늠할 만하다. 나아가 정 전 대표가 단일후보가 되었을 경우 민주당의 조직적 지원 여부와 대선승리 이후의 정부운영 방식에까지 사고실험이 미칠 수 있다.
민주당과의 최종경선 승패 여부, 이어 새누리당 후보로 유력한 박근혜 전 대표와의 대선 승패 여부 등을 조합한 다양한 사고실험에서 그가 가장 목말라 할 것은 자신의 정치세력일 가능성이 크다. 그것 없이는 대통령은 물론이고, '실세 총리'의 역할도 어렵다. 민주당과 손잡고도 새누리당이 대선에서 이긴다면 정치에 발을 디딜 이유가 없다. 최근의 지지율 하락과 더불어 그의 고민은 이래저래 길고 깊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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