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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의학한류/ (상) 임상연구 강국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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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의학한류/ (상) 임상연구 강국 코리아

입력
2012.06.20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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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로벌제약사 "아시아 임상 허브는 한국"… 서울 실적 세계 2위

한국을 찾는 외국인 환자가 늘어나고, 국내 병원의 해외 진출이 잇따르면서 K팝 못지 않게 의료한류 열기가 뜨겁다. 한국 의학은 더 이상 세계의 변방이 아니다. 지령 2만호를 넘어선 한국일보가 단순 의료관광 차원을 넘어 국제학계에서 비상하고 있는 새로운 의학한류의 모습을 3회에 걸쳐 소개한다.

글로벌제약사 로슈는 지난달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제1상 임상시험을 시작했다. 로슈가 아시아에서 선택한 국가가 한국이다. 동물실험으로 효과가 확인된 신약후보물질을 처음으로 실제 환자에게 투여하는 1상 임상시험은 후보물질이 진짜 신약이 되느냐 마느냐를 결정짓는 첫 관문이다. 제약사로선 1상 임상시험을 어디서 할 지가 회사의 운명을 좌우할 중대 결정인 셈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청에 따르면 국내에서 승인된 글로벌제약사의 다국가 임상시험 중 초기 단계(0, 1상)는 2005년에 단 2건에 불과했다. 하지만 2010년엔 23건, 지난해엔 19건으로 10배 가량 늘었다. 전체 단계 승인 건수도 2005년 95건에서 지난해 194건으로 뛰었다. 국제의학계가 한국의 임상연구 능력을 인정하고 있다는 의미다.

서울 다(多)임상 도시 세계 2위

로슈가 국내에서 임상시험을 시작한 물질은 새 항암제 후보. 기존 항암제들과 다른 메커니즘을 통해 암세포의 성장을 막는 유전자가 잘 작동하도록 돕는다는 사실이 동물실험으로 확인됐다. 이 물질로 사람에서도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는지, 볼 수 있으려면 용량을 얼마나 써야 하는지, 독성은 없는지 등을 밝히는 게 이번 1상 임상시험의 목적이다. 또 가능한 최신 의학 지식과 기술을 총동원해 약이 가장 잘 듣는 병과 용량을 찾아내려는 것이다.

임윤희 한국로슈 임상연구부 상무는 "특히 이번 임상에선 후보물질이 환자 몸에 들어가 실제 암세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컴퓨터단층촬영(CT)이나 양전자단층촬영(PET) 같은 영상으로 추적하는 게 핵심"이라며 "한국의 영상의학 수준이 뛰어나다는 점이 (임상시험 국가 선택에)가장 크게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한국과 함께 로슈의 이번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나라는 캐나다, 프랑스, 호주, 네덜란드다. 이 나라들은 많은 제약사가 초기 임상시험을 해온 선진국형 임상시험국이다. 의료시설과 의학기반이 탄탄하다는 나라들이다.

과거 글로벌제약사의 신약은 이처럼 서구 선진국의 임상시험 데이터를 근거로 국내에 들어왔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권의 임상시험은 서구 선진국에서 끝낸 초기 임상으로 유효성과 안전성을 입증 받은 뒤 시판 허가 전 대규모 환자에게 써보는 마지막 단계인 3, 4상이 대부분이었다. 아시아권의 연구 수준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상구 국가임상시험사업단장(서울의대 임상약리학교실 교수)은 "초기 임상일수록 난이도가 높다"며 "국내에서 초기 임상을 하려는 글로벌제약사가 늘고 있다는 건 세계 의료계가 한국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지난해 국가임상시험사업단 분석에 따르면 서울이 세계에서 다국가 임상시험이 3번째로 많은 도시에 꼽히기도 했다. 국내 임상시험까지 치면 세계 2위 수준이다.

개발사도 몰랐던 약효

한국의 임상시험 실력이 최고 수준으로 인정 받는 대표적인 분야가 항암제다. 올해 국내 출시된 세계 최초 유전자 맞춤형 항암제인 화이자제약의 잴코리는 초기 임상시험부터 최종 승인 단계까지 한국 연구진이 참여했다. 한국화이자제약 관계자는 "통상 10~15년이 걸리는 신약개발 기간을 4년으로 줄이는데 한국의 임상연구 역량이 크게 기여했다"고 말했다.

아시아권의 임상시험은 중요한 의학적 의미가 있다. 아스트라제네카가 개발한 항암제 이레사를 2000년대 초중반 국내 말기 폐암 환자에게 임상시험하던 김태유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일부 환자들에서 약효가 두드러지게 좋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들을 분석한 결과 특정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발견됐고, 돌연변이가 있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초기 임상시험을 다시 시작해 이레사가 더 잘 듣는다는 걸 증명했다. 김 교수는 "외국에는 이 같은 돌연변이를 가진 폐암 환자가 5%도 안 되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약 30%"라고 말했다. 한국인에게 이 약을 썼을 때 치료 가능성이 더 높다는 뜻이다. 국내에서 직접 임상시험을 하지 않았으면 몰랐을 사실이다.

이처럼 동서양인의 유전적 차이가 알려지면서 아시아권의 임상시험의 중요성이 커진 것이다. 노바티스는 서양인 임상시험을 거쳐 시장에 나와 있는 고혈압치료제 엑스포지를 최근 한국과 중국, 싱가포르 등 동양 환자에게 다시 임상시험을 진행해 서양인과 마찬가지 효과를 보인다는 것을 추가로 확인했다.

주요 제약사들, 한국 특별관리

과거엔 글로벌제약사의 신약을 국내 환자에게 쓰려면 한국 의사가 임상시험을 하겠다고 제약사를 설득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글로벌제약사가 국내 의료진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지고 있다. 화이憫┥敾?개발 중인 신약의 초기 임상시험을 주로 의뢰하는 나라 리스트인 '핵심임상연구기관(CRS)'에 포함된 유일한 아시아 국가가 한국이다. 한국화이자제약 관계자는 "선정국 중 미국과 프랑스를 제치고 한국이 임상시험 수와 등록 환자수 1위"라고 말했다. 아스트라제네카도 한국을 항암 분야 초기 임상연구의 아시아 허브로 지목하고 국내 젊은 암 연구자를 선발해 연구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로슈는 본격적인 임상시험에 들어가기 전 세계적으로 저명한 의사들이 모여 연구계획을 짜는 운영위원회를 꾸린다. 임 상무는 "특히 유방암 임상시험 운영위원회는 본사가 직접 나서서 한국 연구자들을 위원으로 위촉한다"며 "현재 진행 중인 유방암 항암제 임상시험의 절반 이상에 아시아에선 유일하게 한국 의사들이 운영위원으로 활동 중"이라고 말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 대형병원 몰린 수도권, 임상시험 70% 싹쓸이

임상시험도 지역 편중이 뚜렷하다. 식품의약품안전청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지난해 다국가와 국내 임상시험의 48%가 서울에서 진행됐다. 23%가 진행된 경기도까지 치면 70%가 넘는 임상시험을 수도권에서 한다는 얘기다. 지방 환자들이 신약을 접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이다. 게다가 대형병원에 집중돼 있다. 식약청 분석 결과 서울아산병원과 서울대병원, 삼성서울병원, 신촌세브란스병원, 서울성모병원 등 이른바 '빅5' 병원이 36.6%에 이르는 임상시험 점유율을 기록했다.

규모가 큰 글로벌제약사의 임상시험을 중소병원이나 지역 연구자들이 적극 나서서 유치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글로벌제약사 입장에선 임상시험 경험이 많은 대형병원 의사를 선호할 수밖에 없는 데다, 수도권으로 환자 쏠림이 집중되는 상황에서 중소병원이나 지역 연구자들이 임상시험에 필요한 만큼의 환자를 모으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학 분야 학회가 나서야 한다는 견해도 나온다. 학회가 임상시험에 참여할 연구자를 다양한 병원과 지역에서 모아두고 글로벌제약사와 이들을 연결해주는 다리 역할을 하는 방안이다. 실제로 미국에는 이런 역할을 하는 학회가 적지 않다고 한다.

글로벌제약사에 의존하지 말고 의사가 주도하는 임상연구가 좀더 활발해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일반적인 임상시험(SIT)은 약을 개발한 제약사가 스폰서가 돼 약과 비용을 연구자에게 제공하는데 비해 연구자가 먼저 제약사에 제안하는 임상시험(IIT)은 약만 지원받는 경우가 많다 보니 SIT가 훨씬 활발하다. 김태유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진료 경험에서 얻는 아이디어가 좋은 임상연구 소재가 되는 경우가 많다"며 "임상시험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서도 능동적으로 임상시험을 제안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임상시험을 하려면 수많은 환자를 관리하고 관련 데이터를 만드는 전문인력이 있어야 한다. 임상연구 코디네이터(CRC)라 불리는 이런 인력이 국내엔 턱없이 부족한 데다 비정규직이 많아 전문성을 쌓기에 부족한 것도 문제라고 많은 임상연구자들이 입을 모은다.

식약청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승인된 임상시험의 22.3%가 종양(항암) 분야다. 신상구 국가임상시험사업단장은 "서양에 비해 동양이 암 환자 비율이 높기 때문이기도 하다"며 "임상시험 분야를 다양화하는 것도 숙제"라고 말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 의사는 실적 쌓고 병원은 수익 쑥쑥

현재 나와 있는 모든 치료법을 동원했는데도 실패한 환자에게 개발 중인 신약의 임상시험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는 '마지막 희망'이다. 환자를 돕고 싶은 의사에게도 마찬가지다. 치료에 신약을 쓸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기 때문이다. 특히 말기암처럼 난치병과 싸우는 환자와 의사는 임상시험에 더 적극적이다. 김태유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옛날엔 임상시험 이야기를 꺼내면 마루타처럼 생각하는 환자가 많았지만, 요즘은 임상시험 정보를 먼저 알고 (참여하고 싶다며)직접 찾아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외국에서 개발 중인 약을 국내에서 공식적으로 임상시험에 쓸 수 있게 된 건 2000년대 들어서다. 그 전까지 국내 환자들은 외국에서 시판 허가가 나야 글로벌제약사의 신약을 접할 수 있었다. 임상시험이 가능해졌어도 처음엔 병원들이 그 가치를 잘 알지 못했다. 의사는 환자만 많이 보면 되고 연구는 부수적인 일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환자를 치료할 때 인종이나 민족에 따라 다른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거나 어떤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등의 세세한 정보를 가장 많이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바로 임상시험이라는 사실을 국내 의사들이 깨닫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이제는 적극적으로 임상시험을 유치하려는 병원도 의사도 많아졌다.

임상시험을 유치한 병원과 의사는 제약사에게서 많은 연구비를 지원 받는다. 방영주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소수의 환자를 집중해서 치료하고 관리하는 초기 임상일수록 연구비가 많다"며 "1상 임상시험 연구비가 3상의 두세 배는 될 것"이라고 말했다.

더 중요한 이득은 '연구하는 병원' 이미지다. 의사 역시 임상시험으로 저명한 국제학술지에 많은 논문을 내면서 '공부하는 의사'가 된다. 이를 통해 더 많은 환자들이 병원을 찾으면서 간접적인 수익으로 이어진다. 신상구 국가임상시험사업단장은 "임상시험 경험을 쌓지 않으면 국내에서 아무리 좋은 약을 만들어도 외국 연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며 "탄탄한 임상시험 인프라가 국내 제약산업 발전을 리드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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