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 동작나루 아나?
예, 과천 지나 서울 올 적에 거기서 나룻배를 타고 한강을 건넜지요.
옛적 야담에 보니 재미있는 얘기가 있더구먼. 노량진에는 무당이 많고 동작나루와 사당골에는 연희광대패가 많이 산다네. 동작나루에 탈광대 놀음으로 먹고사는 부부가 있었지. 때는 이른 봄이었는데 광대 부부가 살얼음이 얼어붙은 강을 건너고 있었네. 남편과 아내는 탈을 벗지 않고 서로 희롱하며 가다가 갑자기 아내가 얼음이 꺼지면서 빠져버렸다네. 광대는 탈을 벗을 겨를도 없이 발을 동동 구르며 얼음 위에서 통곡하였겠다. 웃는 탈을 쓴 광대가 울며불며 두 팔을 허우적거리고 강변으로 나오는데, 구경하던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숨막히도록 웃었다지. 탈은 웃고 그 속에선 우는데 얼굴이 둘이로다, 뭐 그런 이야기라네.
서일수와 신통은 함께 의논하여 처소를 바꾸기로 작정했다. 돈냥도 있겠다, 낯선 사람들과 뒤섞여 잠자고 먹고 하는 것이 불편하기도 하려니와, 며칠도 아니고 오래 머물 바에는 도성 안에 방을 얻자는 것이었다.
이런 일은 김 별장에게 부탁하면 도깨비 기왓장 엎듯이 해치울 텐데.
서일수가 말했고 신통이도 맞장구를 친다.
만복이 형님이라면 도성 안을 참빗 새새처럼 훤히 알 테죠.
두 사람은 오후 느지막이 종루로 나와서 초교를 지나 이간수문 못 미쳐서 있는 하도감으로 찾아갔다. 예전 훈련도감 이하 다섯 군영제를 폐지하고 무위영과 장용영의 두 군영으로 개편한 것이 한 해 전의 일이었다. 무위영이 왕궁을 지키는 군대였다면 장용영은 도성을 지키는 군대였는데 무위영이 하도감에 있었다. 하도감의 삼문 앞에 이르니 대문 양쪽에 털벙거지 쓰고 검은 더그레를 입은 차림새는 옛날의 복색인데 긴 창날 꽂은 양총을 거총한 자세로 군인 두 사람이 지키고 서 있었다. 서일수가 접근하여 군인에게 물었다.
사람 좀 만나러 왔소.
누구요?
김만복 별장이오.
안에 작청(作廳)으로 가보시오.
그들이 옆문으로 들어가 긴 행랑을 지나니 작청이 나오는데 군교 별장인 듯한 사람과 군졸 둘이 근무 중이었다. 김만복의 이름을 대자 근무 중이던 군교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방금 우리와 교대하고 들어갔습니다. 곧 불러 드리지요. 누구시라고 전할까요?
서일수라고 합니다.
그가 눈짓을 하자 군졸이 더그레 자락을 날리며 달려갔고 잠시 후에 군영의 문을 나와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는 김만복이 보였다. 그래도 궁성의 수직 군사라 복장은 깨끗하여 바지에 행전 치고, 미투리가 아닌 검정 갖신 신고, 군졸의 더그레 대신 무릎치기 걸치고, 붉은 띠와 병부를 달았는데 붉은 상모 달린 전립을 썼다.
허어, 아우님이 군복을 입으니 이렇게 풍채가 나는구려.
놀리지 마시우.
세 사람은 그대로 하도감 삼문 밖으로 나오는데 신통이 물었다.
형님, 이대루 퇴청하는 거요?
그럼 어째, 까짓 급료도 안 나오는 판에 퇴청 시각 지킬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만복은 연신 웃는 얼굴이었다. 서일수가 말했다.
어디 좋은 데 있으면 앞장서시게.
제미럴, 좋은 데야 형님이 알겠지. 우리 같은 미관말직이야 탁배기 한 동이에 도야지 수육이면 평안감사 따로 없수.
거 좋지.
두 사람이 걸음을 늦추니 저절로 김만복이 앞장을 서게 되고 그는 청계천을 따라서 마전교 쪽으로 향하였다. 원래 다리 아래쪽에 말과 소나 돼지 같은 덩치 큰 가축들을 팔고 사는 장이 서는지라, 인근에는 육것을 안주로 하여 술을 파는 모주집이 줄지어 있었다. 그가 납죽 엎드린 것 같은 초가집의 삽작을 밀고 들어가며 걸걸한 목소리로 외친다.
주모, 나 왔소.
부엌에서 몸집이 절집 배흘림기둥 같은 중늙은이 아낙이 상반신을 내밀더니 그를 보고는 픽 웃으며 대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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